그러니 감내해야겠다

계란찜 전쟁

by 더딘

식당에서 고기를 굽는 동안 뚝배기에 팔팔 끓어오르고 있는 계란찜이 반찬으로 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고기를 뒤집고 계란찜을 먹으려고 보니 봉긋한 계란찜은 사라지고 숟가락으로 잘 뒤섞여 있었다. 상대에게 왜 계란찜을 다 섞었냐고 물으니 당연히 섞는 거 아닌가? 하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그게 왜 당연히 섞는 거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안 섞으면 아래는 타잖아. 위는 약간 덜 익었으니깐 섞어야지."

"다 섞으면 맛에 차이가 없어지잖아. 그리고 이 정도면 위도 다 익은 거야."

연애하다 보면 짧은 순간 오가는 말투와 표정에서 '아 오늘은 싸움을 피할 수 없겠는데?' 감이 올 때가 있다. 대체로 그 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날 결국 계란찜을 섞는가 마는가로 자존심을 건 다툼이 있었다.


결혼하고 카레나 짜장을 만들어서 먹을 때도 그랬다. 밥에 카레를 얹으면 아내는 잘 섞어서 먹었고 나는 뿌려진 그대로 섞이지 않은 밥과 카레를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그래야 입 안에서 섞이는 느낌, 어느 때는 밥이 더 많고 어느 때는 카레가 더 많아서 씹을 때마다 달라지는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맛의 그라데이션. 아내는 내 모습을 보고 진상이 따로 없다고 했다.

"이렇게 먹어야 맛의 차이가 느껴지지"

"입안에서 섞나 그릇에서 섞나 그게 그거지"

그래도 이제 이런 일로 다투지는 않는다. 다행히 각자 그릇이 있어서 자기 스타일로 먹으면 되니까. 만약 한 그릇에 밥과 짜장을 넣어서 나눠먹어야 했다면 상황을 달라졌을 테지만.


같은 음식과 맛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느끼고 좋아하는 지점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익숙한 무언가와 부딪히는 상대를 만나게 되면 이해하려 하기보다 나를 방어하려는 의식이 먼저 작동하는 듯하다. 또는 상대의 행동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국밥집에 가서 국물 따로 밥 따로 먹는 사람도 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며 상대의 국밥에 깍두기 국물과 새우젓을 넣고 간을 맞춰주는 경우처럼 '이게 지금 뭐 하는 건가?' 하는 경우가 누구나 크고 작게 있었을 것이다. 상대의 선한 의도가 폭력이 되고 나의 고유함은 별스러움이 된다. 그런 식사자리가 이어진다면 거북하고 체하기 십상이다. 상대에 대한 인상도 좋아질 리 없다.


그래서 함께 하는 식사에서는 꼭 물어보는 행동이 필요하다. 상대는 나와 다를 수 있고, 나와 같은 입맛일리 없고, 제안은 할 수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야, 너 부먹이야 찍먹이야?" "난 부먹, 상관없어, 오늘은 찍먹" 얼마나 단순하지만 명쾌한 순간인가. 식사의 맛을 더 높이는 건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하다.


계란찜 사건 이후 둘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다. 1. 뚝배기가 나온다. 2. 계란찜 위에 숟가락으로 선을 그어 반씩 영역을 나눈다. 3. 한쪽만 뒤집어 섞는다. 카레와 짜장에도 룰이 생겼다. 1. 밥은 퍼주지만 2. 소스는 각자 떠서 먹는다. 계란찜보다 더 단순하다. 자기 기준으로 하다가 갈등과 오해가 생겼고 나중에는 섞어?, 네 것도 퍼? 처럼 대화로 의사를 묻던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지난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성공적으로 정리될 수 있었던 건 차이가 있더라도 따로 먹기보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감내해야겠다. 정말 감내할 수 없다면 계란찜을 따로따로 주문하는 방법도 있긴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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