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만드는 게 어려운 음식
여름이면 장모님은 콩물을 만들어두시곤 했다. 콩물이 뭔가 했는데 콩국수에서 들어가는 육수, 내가 사는 곳에서는 콩국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이렇게 콩을 먹는구나' 정도의 흥미를 돋우는 음식. 장모님은 처가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아이보리색이 나는 뽀얀 콩물을 페트병에 담아두었다가 챙겨주셨다. 그리고 상하기 쉬우니 빨리 먹어야 한다는 말을 몇 번씩 덧붙이시곤 했다. 당신이 꽤 애정하는 음식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콩물, 콩국이라고 하는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콩물은 '이런 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단순했다. 내게 콩물은 생식이나 생야채 주스를 마시는 것과 비슷했다. 콩을 삶고 갈아서 적당한 소금간만 해서 먹는 차가운 국물. 먹다 보면 목 넘김이 껄끄러워 기침이 나곤 했다. 굳이 만들어서 먹고 싶은 수준은 아니어서 자주 경험하지 못했다. 차라리 콩물만 먹기보다는 잘 삶아진 소면을 넣어서 콩국수로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흔한 재료로 만든, 보통의 음식이라는 선입견은 '나도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콩국을 평가절하했다.
날이 덥던 어느 여름엔가 '심심한데 콩국수를 해 먹어볼까?' 생각했다. 집에 남은 콩도 있으니 좀 불렸다가 삶아서 갈면 콩물이 되겠지 싶었다. 그렇게 여차저차해서 만든 콩물은 별 맛이 없었다. 처갓집에서 먹던 맛과 비교하면 여러 맛들이 비어있었다. 혹시 다른 비법이 있는 걸까.
"어머니, 콩물 어떻게 만들어요? 한 번 해보려고요"
"콩물 만들게? 그냥 다음에 와서 가져가. 해둘 테니까"
"콩이 좀 있어서요. 연습 겸 한 번 해볼까 해서요"
전화로 들었을 때는 별로 어려운 게 아니었다. 콩을 불린다, 삶는다, 껍질을 벗겨내도 된다, 믹서기에 간다, 소금 간을 한다. 끝. 나도 똑같이 했는데? 콩이 오래돼서 문제일 수도 있겠다. 다음에 처가에 가면 다시 물어보기로 생각했다.
다음 처가에 갔던 날 장모님과 같이 콩물을 만들었다. 아마 전화로 전하는 걸로는 못 미더웠을 테지. 장모님과 같이 하면서도 만드는 순서에 차이는 없었다. 다만 당신이 설명했지만 내가 대충 넘어갔던 말이 있었다. "적당히"였다. 적당히 불리고, 적당히 삶고, 적당히 갈고, 적당히 간을 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적당히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대충, 대략" 정도의 뜻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보니 오히려 반대였다. 알맞은, 정확한 때를 찾으라는 의미와 더 비슷했다. 그 순간이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가버린다면 적당한 순간이 아니고, 그러면 콩물의 맛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너무 짧은 시간 삶으면 콩물에서 풋내가 났다, 너무 오래 삶으면 특유의 달큰함이 없었다. 너무 거칠게 갈면 먹을 때마다 목이 까슬까슬해서 불편했고 너무 잘게 갈면 콩물에 거품이 일어났다. 간이 너무 세면 고소함을 해치고 싱거우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상해버리기도 했다. 그러니 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려면 단계 단계마다 "적당한" 순간을 정확히 알아야 했다. 그건 말로 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시도했던 콩물은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한 번에 성공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적당한 순간을 알려면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관심을 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콩물은 흔한 재료로 만든 보통의 음식이 아니라 흔한 재료에 담긴 맛을 알맞게 끌어내야 하는 세심한 음식이다.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음식인 것이다. 장모님과 콩물을 만든 이후부터 콩물이 식탁에 올라오면 왠지 더 조심히 먹고 싶어 진다. 밥도 말지 않고 김치도 넣지 않고 그냥 그 온도와 간이 변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한 숟갈씩 떠먹게 된다. 다른 맛을 섞지 않고 먹는 게 콩물에 대한 예의가 된 듯하다.
콩물에 대한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만든 이가 권했을 때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수고로움으로 만든 음식인지 알게 된 이상, 그 음식을 먹겠느냐고 권하거나 한 그릇 더 먹겠냐고 물어올 때 그만 먹겠다고 하기가 쉽지 않다. 내게 전하는 호의에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답하는 게 음식과 음식을 만든 이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콩국 맛이 어떠냐는 장모님의 물음에 항상 이렇게 답을 하게 된다.
"맛있어요. 한 그릇 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