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빵집

음식과 이야기가 가능한 거리, 그런 사람

by 더딘

병원 진료 후 약을 먹자 열이 떨어지는지 아이는 집에 바로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래 그럼 근처를 좀 걸어볼까? 아이와 가보지 않은 골목을 향했다. 그러다가 처음 보는 작은 빵집을 찾게 되었다. 이름도 영어로 된 게 아니라 순우리말이었다. 글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무렵인 아이도 빵집 이름에 흥미를 보였다.


빵 종류는 다양하지는 않았다. 가볍게 먹을만한 빵을 골라서 계산을 하고 하나 있는 야외 의자에 앉았다. 손님용이 아니라 사장님이 쉬실 때 잠시 앉으려고 두었을 것 같았다. 간판을 보고 들어가 빵을 구경하고 사서 의자에 앉을 때까지의 느낌을 종합하면 터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빵집이었다. 뭔가 안정된 것 같으면서도 달떠 보이는 느낌이랄까. 뭐 이런 동네 빵집 있어도 나쁠 건 없지 생각하며 빵을 먹었다.


빵은 맛있었다. 예상보다 더 맛있었다. 갓 나온 빵의 따뜻하고 파근파근한 식감이 좋았다. 밀가루로 만든 빵인데 이런 식감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많이 달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았다. 아이와 빵을 나눠먹다가 문득 이 빵에 무얼 더 넣고 싶어졌다. 빵과 무얼 같이 먹으면 좋을지 생각하기는 했지만 더하고 싶은 재료가 무엇인지는 고민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마침 빵이 어떠냐고 사장님이 물었고 맛있다는 답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이 빵 안에 감자가 들어가도 맛있을 것 같아요. 감자샐러드나 감자소처럼 만들어서 넣으면 파근파근한 식감이 더 살 것 같아요."


사장님은 내 이야기를 재밌다는 듯 들으셨다. 하지만 이후 빵집에 종종 들렀지만 내 제안 메뉴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베이킹을 해본 적도 없는 지나가던 손님이 하는 말이었으니 그럴만했다. 사장님도 나름의 레시피와 계획이 있었을 테니까 섭섭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보다 훨씬 전문가일 테고 그 메뉴가 없더라도 그 빵집의 여러 메뉴들은 나름 개성 있고 고집 있었다.


그 빵집과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서부터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곤 했다. 이 빵은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고 설명을 해주시기도 했고 나는 지난번에 어떤 빵을 먹었더니 좋았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와 같이 들렀을 때는 빵에 찍어먹는 초콜릿잼을 만들었다며 넣어주셨다. 엄청나게 멋지고 화려한 빵 맛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담백하게, 거짓말하지 않는 느낌의 빵을 만날 수 있는 곳. 인사하며 들어가서 계산하며 나올 때까지 따뜻한 분위기와 느낌을 받고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맛보는 일은 목적이 분명한 과정이다. 주문하거나 고르는 행위 뒤에 계산을 하고 맛을 본다, 또는 식사 후에 계산을 한다. 음식을 맛보는 과정에 예상하지 못한 간섭이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면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주 가는 식당이더라도 식사하는 중에 사장님이 직장이 어디냐고 묻기보다는 이 것 더 먹으라며 계란프라이를 하나 더 놓아주는 게 마음 편하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내 취향을 묻기보다는 "오늘은 00가 괜찮아요"라고 해주는 정도가 적당하다. 익숙하지 않은 타인이 내게 가까워지려고 한다거나, 타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에 내가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지나친 사적 이야기가 아니라 적절한 거리감을 두고 기분 좋은 대화가 가능하려면 매개물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마 그때 그 빵이 적절한 매개물이었던 것 같다. 당신이 직접 만든 빵과 내가 구입하는 빵.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이 빵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이었기에 부담이 적었다. 나는 초보자 입장에서 빵의 맛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상대는 전문가로서 빵을 다루는 법에 대해 조언했다. 서로의 이야기가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었지만 세세한 부분은 크게 겹치지 않았다. 매개물을 가운데 두고 이뤄지는 적절한 거리감의 대화였을까. 덕분에 빵의 맛도 괜찮지만 그 빵집은 단순히 좋은 빵을 사고파는 곳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곳이 되었다.


그래서 그 빵집을 지나다니다 보면 이곳처럼 이야기가 있는 빵집이나 다른 가게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너무 가까워지지도 않고 너무 멀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당신이 만든 음식과 내가 맛보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음식의 맛보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 나눈 그 순간의 분위기가 더 마음에 새겨지기도 할 테니까. 키오스크, 비대면주문이 늘어난 시대에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돈으로 사고파는 호의이고 고객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서비스라고 생각되지 않는 어딘가에서 이뤄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그 빵집은 매스컴을 탄 후에 여러 지역에서 유명해진 빵 메뉴를 주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택배로도 주문을 받는 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방송에 나온 빵이 아니라 다른 거였는데... 어느 날 빵집에 들러 사장님에게 그 빵은 언제 나오는지 물으니, 몇 개 메뉴 주문이 많이 밀려서 당분간 다른 빵 만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을 하셨다. 예전에는 사장님을 보면 빵을 만드는 게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적잖이 피곤해 보였다. 많이 바쁘시겠지? 방문할 때마다 웃으면서 인사해 주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제는 사장님보다 아르바이트하는 분과 마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상황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해됐다. 이후 점점 그 빵집과 거리가 멀어지고 방문하는 횟수도 줄었다. 사장님이 성공하기를 응원하지만 내심 나만 알고 있던 비밀 공간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좋은 느낌을 주었던 그 빵집에 감사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적절한 거리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따뜻함과 행복을 받을 수 있는 곳. 같이 드나들던 아이도 종종 그 빵집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제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새로운 장소를 찾아봐야겠다. 분명 나처럼 이야기를 주고받기를 기다리는 곳이, 그런 사람이 남아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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