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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정원 Mar 16. 2020

여행의 이유

다시 펼쳐 읽고 싶은 한 줄이 있기에


        금요일에 허리를 삐끗하곤, 일요일인 오늘도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주일 오후를 보내고 있다. 휴대폰으로 사부작 그림이라는 것도 그려보고 책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블로그와 여기저기에 생각을 끄적여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2017년 가족여행 때 찍은 사진이 생각나 앨범을 들췄다. 큰 맘 먹고 다녀온 엄마의 회갑기념 여행이라 사진앨범으로 만들었던 게 두고두고 참 잘한 일이라 생각이 든다.

총 4권 분량인데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한 그 때의 에피소드를 회상해본다. 그러다 엄마한테 "여기 기억나?" 하고 여쭤보면 여지없이 "이름은 생각이 안 나네"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음엔 꼭 지역이름, 산봉우리 이름까지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야겠다.

삐끗한 허리가 불편해 두 권을 채 보다 말고 방에 누워 어제 읽던 여행에세이를 펼쳤는데 '어쩜 이리도 내 마음과 같을까' 하는 구절을 만났다.



어쩌면 여행자들은 세상 모든 곳에서 자신만의 장소를 보고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우유니, 자신만의 마추픽추, 자신만의 카파도키아를. 당신이 본 우유니와 내가 본 우유니는 같은 곳이 아닐 것이다. 여행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의미 있어진다.

남들 다 하는 여행, 남들 다 가는 장소라고 해서 떠나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같은 곳이라도 마음속으로 다른 부분에 밑줄을 긋고 있을 테니까. 다시 펼쳐 읽고 싶은 그 한 줄이 있기에 우리는 또 떠나고, 힘을 얻어 살아가는 것이니까.

- 389쪽, 여행에 밑줄을 긋다 <여긴 지금 새벽이야>, 김신지



여행지에서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유명한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된 곳은 더더욱 익숙한 차림새와 말투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누군지도 모르고 스치듯 지나왔지만 모두들 각양각색의 사연으로 이곳에 왔으리라. 같은 공간, 같은 시각이지만 저마다의 사진 속엔 각자의 이야기로 기록될 것이었다. 여기에 여행의 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이후에는 그때처럼 밝고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 없는 이유는 그곳이 너무나도 멋진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이 그 여행만큼 간절히 바라고 준비하고 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순간이 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쁘게 일상을 살다보면 오늘 펼쳐 본 사진첩을 또 언제 열어볼지 모르지만, '펼쳐 읽고 싶은 한 줄'이 있기에 또 힘을 얻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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