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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절반은 귤을 먹는다. 부모 마음이란...

by 한바위


거실에 앉아 현관 전실을 바라본다. 진한 주황빛의 귤이 담긴 바구니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해의 절반 동안 늘 같은 자리를 차지하는 익숙한 풍경이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제주 시댁에서 귤이 온다. 완전히 익지 않아 푸르스름한 색이 군데군데 섞여있지만 먹기에는 이미 충분한 맛이다. 나무에서 갓 따서 보내주신 새콤달콤한 귤을 먹으며 '이제 한동안 과일 걱정은 없겠구나' 생각한다. 그렇게 해마다 겨울은 시부모님이 보내주시는 귤과 함께 시작된다.



매주 한 박스 혹은 두 박스씩 배달되는 귤 택배는 겨울의 끝자락이 오면 품목이 살짝 변한다. 동글동글한 주황색인 건 똑같지만 귤에서 한라봉으로, 그 뒤엔 천혜향으로 바뀌어서 배달되는데, 같은 감귤과라도 수확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는 마지막으로 카라향이 왔다. '카라향은 재배도 안 하는데 어쩐 일이시지?' 했더니 이웃에게 얻은 거라고 한다. 4월의 끝자락에 온 겨울 과일답게 카라향은 이미 수분이 빠져 쭈글쭈글한 섬유질만 남아있다. 입안에 넣으니 오래 농축된 단맛만 느껴져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다. 귤 종류라면 아무거나 잘 먹는 '귤 집 아들'인 남편만 간간이 입에 넣을 뿐이다.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귤의 행렬이 드디어 막을 내리는 때가 온 것이다.



남아있는 카라향을 처리하며 부모님 마음을 생각한다. 택배를 보내실 때마다 귤 이외에도 참기름이며 된장을 보내시는 마음, 케일 주스를 먹는 우리 식구를 위해 직접 농사지으신 케일을 귤 사이에 넣어 놓으신 마음, 유채꽃이 필 때면 나물 해 먹으라며 유채 잎을 가득 보내시는 그 마음을...



가끔은 불편할 때도 있다. '귤만 보내주시지 왜 자꾸 다른 걸 넣으시나', '아직 전에 보내주신 유채도 냉장고에 그대로인데 또 보내시면 어쩌라고' 하며 대신 남편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택배 잘 받았냐는 확인 전화를 하시며 전에 보낸 것들 다 먹었냐고 물어보실 땐 '내가 알아서 할 텐데 왜... ' 하는 맘이 나도 모르게 불쑥 올라온다.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있어서는 우린 여전히 그 마음을 모른다. 올해 첫째 아이가 멀리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이전엔 알지 못했던 부모의 마음을 뒤늦게 경험한다. 혼자 있는 아이가 혹시 아프지나 않을까,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건 아닐까, 친구를 못 사귀는 건 아닐까... 짐을 싸서 기숙사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아이를 떼어놓고 내려오면서 알았다. 품 안에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는 자식 챙기는 게 훨씬 애가 쓰이는 일이라는 걸.



시부모님이 택배 박스에 이것저것 마음을 담아 보내는 것처럼 나와 남편도 아이에게 수시로 택배를 보낸다. 택배 박스에는 부모의 걱정이 같이 담긴다. 뭐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더 보내줄 건 없을까? 택배를 보내면서 시부모님 생각이 자꾸 난다. 30년 전 육지에 있는 대학에 아들을 보내고 걱정하셨을 그 마음을. 핸드폰도 없고 택배도 없던 그 시절 그 마음을 어떻게 감당하셨을지... 그 아들이 가정을 꾸리고, 아들의 아이가 다 자란 이 시점까지도 여전히 챙기시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부모가 되어 그 길을 따라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번 연휴 동안 아이가 다녀갔다. 4박 5일이라는 긴 시간이 어찌나 쏜살같이 지나가는지 마치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다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아이가 탄 기차가 출발하고 되돌아 나오는데 눈물이 핑 하고 돈다. 언제 이렇게 커서 부모 품을 떠나 생활하는지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여전히 헤어지는 건 적응이 잘 안 된다.



부산역 밖으로 나오자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아이 학교가 있는 지역의 날씨는 어떤지 검색해 본다. 아침부터 여러 번 확인한 날씨이지만 혹시나 우산을 안 가져간 아이가 기차에서 내려 비를 맞을까 또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일 제주도 날씨와 우리가 사는 부산 날씨를 함께 찾아보시는 시아버지를 떠올린다. 그 마음을 이제는 안다. 나도 부모님과 같은 행동을 하니까.



부모 마음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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