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짧은 글
목표 없는 삶이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얘기하렵니다.
목표를 정하는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피로를 가지고 온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과 모레, 그 너머의 시간들 속에. 오늘의 해야 할 일을 분리 분할해서 하나씩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으로 분배 배치하는 것.
오늘의 할 일을 나눈다.
과거에 치이고 오늘에 허덕이는 내가 내일의 시간을 하나하나씩 벌써 규정하는 것들이 과연 건강한 일인지 회의가 듭니다.
어릴 적부터 목표와 계획을 강요당해왔습니다. 초등학생 땐 방학시간표, 중학생 땐 스터디플래너, 고등학교 땐 진로계획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메이플스토리, 바람의 나라만 좋아했던 어린아이에게 어른들은 뭘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요.
가로줄이 가득한 종이 몇 장에 내일, 내일모레 해야 할 것만 같은 그 무언가 무형한 것들을 적어나가는 그 시간이 때로는 공상영화처럼 즐겁기도 했지만 그 행위들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우리를 강요하고 있었나 봅니다.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해야 하는 거니까.라는 이유로 대충 휘갈긴 종이 위의 계획은 나를 저당 잡고 행복을 방해합니다. 계획과 목표의 설정은 곧 실패를 말합니다. 오늘 5가지의 계획이 있었다면, 4가지를 달성해도 3가지를 달성해도 실패인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100%가 아니라면 실패가 된다.
결국 세워진 목표는 달성하지 못할 경우 내 하루를 실패한 하루로 만듭니다. 오늘 하루 아무리 많은 일과 경험과 느낌을 공유했다더라도, 나를 실패로 몰아세우는 그것 하나가 제 하루를 망치곤 합니다.
누군가에겐 좋은 동기부여와 원동력이 될 수 있겠지만, 소중한 매일을 실패로 낙인찍는 목표가 싫어 저는 더 이상 플래너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저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00%를 달성하지 않아도 10%에도, 20%에도 혹은 잴 수 없을 만큼 작은 진행률 속에서도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주저앉아 "오늘은 여기까지"를 되새기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즉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제가 지배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있다면 달성을 강요받습니다. 목표치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계속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목표가 없다면 어디든 종착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지점이든 쉴 수 있고,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종착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속도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할당량과 내일의 할당량을 오늘의 내가 정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겠죠. 각자 다른 시간 속의 내가 있고 모두에게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합니다.
저는 목표가 없기에
1. 미래의 시간을 쪼개고 오늘의 일정을 붙이는 피로를 겪지 않습니다.
2. 오늘의 행복을 실패로 평가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내가 만족한다면 그 자체로 성공으로 정의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목표를 잃었기에 조금은 더 행복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