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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Sep 03. 2021

전생에 관하여



군 제대 후부터 꿈속에서 항상 군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꿈속의 나는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대부분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왜 그런지 궁금해 아는 분께 여쭤보니 군대에서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머릿속에 각인된 거라서 그럴 거라고 말씀하셨다. 의문이 풀리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중요하지 않은거라 생각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여러 군인 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은 내가 죽는 꿈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꾼 꿈으로, 꿈속에서 나는 원래 군인이 아니었지만 전쟁같은 외부적인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그 상황은 속에서도 싫었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결국 군복을 입긴 입었지만, 그 꿈속의 나는 그저 무사히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꿈에서 내가 바라본 풍경은 어느 산속에서 행해지는 전투 훈련 후 휴식 시간이었다. 아마도 나는 전투에 관련된 기술을 가르치고 있던 교관이었던 것 같았다. 휴식 중에 사회에 있었을 때에는 무엇을 했으며,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 포탄이 떨어졌다. 포탄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모두들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대피시기 위해 목청을 높여가며 피하라고 소리 지르다가 갑자기 내 시야가 땅에 고꾸라지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 ‘다른 사람들은 다 대피를 했나’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두 발로 달리면서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다행이다 다 대피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중에 시야는 완벽하게 닫혔고, 그렇게 잠에서 깼다.



 처음에는 이 꿈이 뭔가 싶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포탄이 터지는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대피를 먼저 생각하는 나의 멋짐에 나 홀로 한동안 취하기만 했지, 평소에도 내가 군인인 꿈은 자주 꿨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지나고 나서 불현듯 떠오르는 이 꿈을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 내 가까운 전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외에도 내가 군인인 꿈은 여러 번 꾸었다. 군복을 입고 대통령을 만나기도 하고, 한참 직장 생활할 때에는 사관학교에 입교하는 꿈을 꾸었고, 올해 초에는 예비군 훈련에 입소하는 꿈을 꾸었다. 며칠 전에는 수료증을 받고, 전쟁에도 나갈 준비를 하고, 또 뭔가를 수색하고 있었다.



 어제는 내가 군인 꿈을 왜 꾸는지 지금까지 꿔 왔던 여러 군인 꿈들을 떠올리면서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과거에 꾸었던 군인으로 죽은 꿈, 그 꿈이 시작점이 아닐까? 지금의 삶 바로 전 생에 군인으로 죽었기 때문에, 비록 현생에서는 군복을 입고 있지 않지만 꿈속에서는 과거의 미련(혹은 업)으로 인해 군복을 벗지 못하고 여전히 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슨 미련일까. 그때의 내 마음을 추측해 보았다. 사는 시대는 달라도 과거의 나라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죽이면 그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 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방아쇠를 당겨 사람을 죽게 한 것에 대 깊은 죄책감을 가졌던 것 같다. 또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광기넘치는 전쟁의 상황에서 그저 군인의 의무를 다 한 것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무너져 내려가는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면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는 없을까, 아니면 적어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 필사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전생의 나는 비록 당시 상황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 그에 따른 깊은 죄책감을 가졌고 그때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에, 현생의 나는 그 업을 어떻게 해서든 닦아 내기 위해 그렇게 활인업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진짜 내가 전생에 군인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그런 건지 사실 여부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나로부터 이번 생까지 이어진 활인에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확실히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던지 전심전력으로 해 나가야 할 길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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