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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Jun 21. 2022

음악, 음식 그리고 사회

1.
누군가 나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멋진 음악이 흐르는 장소에서 누군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답할 것 같다. 음악과 음식을 누군가와 함께 즐긴다는 것. 표현이 세련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다운 답이라고 생각한다.


 음악과 음식은 조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본질적으로 서로 비슷한 것 같다. 수많은 음들은 음악 전체에서 어우러져 개성 있는 음색을 표현하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아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고, 음식 또한 수많은 맛들이 자신만의 맛을 표현하면서도 조화롭게 어울려 접시 위에 담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지휘하는 지휘자나 음식을 만드는 셰프는, 비록 다루고 있는 대상은 다를지라도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 자체는 서로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그 무엇들 – 지휘자에게는 음과 악기의 음색, 셰프에게는 재료의 맛과 질감 등 – 이 다른 것들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전체 속에서 개성을 잃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 이것이 지휘자와 셰프가 본질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같은 노래라도 다른 가수가 부르면 느낌이 다르듯, 같은 클래식이라도 다른 지휘자가 지휘하면 느낌이 다르다. 한때 베토벤 교향곡 9번 ‘운명’의 4악장 좋아해서 다양한 지휘자가 연주한 것을 자주 들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단연 푸르트뱅글러와 카라얀의 연주였다.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한 곡은, (나같이 모르는 사람의 귀에는) 뭔가 박자가 안 맞는 것처럼 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음들에서 다른 지휘자의 곡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강한 감동을 받았다. 카라얀이 지휘한 곡은 좀 더 내 취향에 맞았다. 뭔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공대생 출신 아니랄까 봐 성격이 지휘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만 같았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카라얀의 지휘가 좋았지만, 감동의 강렬함은 푸르트뱅글러가 더 좋아서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은 파스타와 피자 중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힘들다.


 셰프의 경우도 비슷하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두 셰프 – 제이미 올리버와 고든 램지는 푸르트뱅글러와 카라얀의 경우에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제이미 올리버는 옆집 형님같이 계량도 눈대중으로 하고 음식을 술술 해 나가는 반면 고든 램지는 조리 과정을 칼같이 엄격히 한다. 실제로 그 사람들의 음식을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두 사람의 음식을 먹고 비교해 보게 된다면 제이미 올리버의 음식은 푸르트뱅글러 스타일, 고든 램지의 음식은 카라얀의 스타일과 매치될 것 같다. 음식에 대한 내 생각은 고든 램지 쪽에 가깝지만, 제이미 올리버의 스타일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이 또한 둘 중에 하나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

3.
사람이 사는 사회도 음악 그리고 음식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지휘자는 음악의 음에 대해, 셰프는 음식의 맛에 대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사회의 적절한 곳으로 인도해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듣기 좋은 음과 먹기 좋은 맛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좋은 사회 또한 정답이 정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음과 좋은 맛이 어떤 건지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사회가 무엇인지 우리는 (표현은 하지 못하더라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아갈 방향 또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가 될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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