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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Nov 06. 2022

시를 쓴다는 것

1.
올해 초쯤 옆팀 차장님이랑 저녁을 먹었는데, 나를 보면 평범한 직장인 같지는 않고 오히려 진리를 찾는 구도자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근 10년 동안 불경을 계속 읽어왔으니까 그분이 관찰한 게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경을 계속 읽어왔던 이유는,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진리라고 표현할 만한 그 무언가를 찾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불경을 읽으면서, 내가 그 속에서 찾아왔던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라면 글자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현실 그 자체가 진리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경과 더불어 함께 읽는 철학책들까지 모두 덮어버렸다.

2.
올해는 세상 속에서 맹렬히 쓰여야 할 시기라는 선생님의 조언과 함께, 책 속에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이 곧 진리라는 걸 몸으로 깨우치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고 몸으로 직접 맞닿뜨리는 세상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나침반 없이 길을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책을 다시 읽고 있다. 대신 이번에는 불경이 아닌 문학을 읽는 중이다. 특히 시는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예전부터 동양에서 진리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시를 중점적으로 보고, 또 다양한 세상사의 표현방법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다양한 사람들의 시를 접하고, 시인들이 쓴 수필도 읽어보고 있다. 그러다 다카와 슌타로의 인터뷰를 글로 엮은 책 '시를 쓴다는 것'을 읽으며 생각한 게, 내가 지금까지 진리라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카와 슌타로의 인터뷰는 그냥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자연스럽게 관찰하고 느낀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느 거창한 무언가가 있어서 시를 쓴다기보다는, 본인이 좋아서, 그리고 시를 쓰면 입금이 되어서와 같은 솔직한 이유로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시의 표현에 있어 언어가 가지는 한계성과 유용성, 다시 말해 선가에서 다루는 불립문자, 불외문자의 핵심을 정확하게 다루고 있어 그 모습이 한 명의 선승처럼 느껴졌다.

그의 인터뷰와 시를 읽으면서 도를 이루었다고 하는 선가의 역대 선지식들을 왜 백염적(벌건 대낮에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이라고 말하는지, 그리고 나도 나중엔 백염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좋아하는 시인인 백석은 타국의 시인인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좋아했다. 백석이 그랬던 것처럼 나한테도 살아생전 타국의 시인을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야 그런 시인을 찾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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