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선 Aug 19. 2023

서 씨의 마음

1.
 1998년, 다시 말해 25년 전 이맘때 쯤 전국 웅변대회에서 대한민국 최연소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지금도 그 기록이 유지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한국나이 8세로 역대 최연소 총리상 수상자였다.

 어렸을 땐 그냥 트로피 큰 거 하나 받고, 집에 가서 불고기 먹을 생각에 그냥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을 받고 나서도 내가 총리상을 받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생각도 없었고, 다른 대회 나가서도 똑같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할 뿐이었다.

간혹 어쭙잖은 실력을 가지고 자만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압도적인 실력차이를 몸으로 느끼게 해 주어 세상이 넓다는 걸 보여준 적은 있었으나, 나 또한 다른 분야에서 저런 사람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으니 함부로 자만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2.
 나에겐 이런 타이틀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스피치 관련 역량은 의외로 써먹을 곳이 별로 없다. 물론 없는 것 보다야 있는 게 훨씬 더 좋지만, 종교지도자 같은 직업을 가지지 않는 이상 딱히 필요한 역량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대학생활, 사회생활 하면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은걸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내가 진짜 역량이 있는 건지 그 자체도 의심이 간다.

3.
이렇게 내가 가진 역량에 대해 이런 식으로 주저리주저리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요즘 겪는 힘든 일에 대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 총리상 최연소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끌고 와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잡기 위함인 것 같다.  

 딱히 그 타이틀에 애착을 가지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내 안에 자그마하게 자긍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마 지금 내 마음은 김승옥의 '역사(力士)'에 나오는 서 씨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서 씨가 어느 날 밤 주인공에게 동대문 성벽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금고만 한 돌덩이를 자기 머리 위로 치켜올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의 마음 - 그 마음은 다시 말해, 자신의 능력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나가야 하는 사람이 느끼는 고독감과 누군가에게는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서 씨의 마음이었을 것이며, 이 마음이 바로 지금 내 마음과 같다.

SNS에는 누구나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만 보여준다. 내가 올리는 글도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많은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