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나는 추리소설의 열렬한 독자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어두운 이야기,
셜록홈스 속 비극적 사건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반전에 깊이 빠져들었다.
등장인물들의 절망과
예기치 못한 상실과 배신이 드러나는 순간의 충격,
그 모든 것이 짜릿했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갈등과 눈물, 화해의 장면에 기꺼이 몰입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서점의 추리소설 코너는 자연스레 지나치고
드라마 속 갈등에 금세 피곤함을 느낀다.
예전처럼 긴장감과 박진감을 더는 소비하고 싶지가 않다.
이 변화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보다 크고 작은 상처가 차곡차곡 쌓여서이지 않을까.
친구의 무심한 말, 가족과의 반복되는 갈등, 예상치 못한 이별
사라진 줄 알았던 상처들은 시간이 흐르며 옅어졌을 뿐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의 어둠은 더 이상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잠들어 있던 아픔을 건드리는 자극처럼 다가왔고,
화면 속 인물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예전에 카타르시스로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그저 상처를 헤집는 일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강렬한 파도를 견딜 힘이 남아 있지 않기에 나는 고요를 택했다.
잔잔한 에세이, 평화로운 다큐멘터리, 나른한 인디음악.
이들은 내 과거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때로는 어떤 극적인 장면보다 더 충만하게 나를 채워준다.
나에게 있어서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이런 걸지도 모른다.
상처가 쌓일수록 자극적인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
자극 대신 평안을, 강렬함 대신 고요함을 택하는 것.
나는 오늘도 은은한 것들을 선택한다.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잔잔히 흘러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