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걷던 길 위에, 음악이 심어놓고 간 마음 하나
며칠 동안 계속된 비로, 집 안에 틀어박힌 하루들이 이어졌다.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하루의 대부분이 되던 날들.
그리고 마침내 비가 멈춘 어느 날, 나는 자연스럽게 익숙한 길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느긋한 걸음에 맞춰 이런저런 생각을 흘려보내며 걷는 길.
걷는 속도도, 보는 풍경도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 익숙함이, 어쩌면 무감각함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길을 그저 지나가기만 했던 것 같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풍경들, 들리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는 소리들 사이를 기계적으로 걸었다.
그렇게 무심히 공원을 한 바퀴 돌 무렵, 어디선가 낯선 기척이 감각을 건드렸다.
공원 입구 쪽에서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졌고,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아래, 작은 박스를 열어둔 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직접 준비한 조명이 희미하게 손끝을 비추고
바이올린의 선율은 공기 속을 부드럽게 가르며 퍼져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그 음악이 이상하게도 내 걸음을 붙잡았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집에 갇혀 있던 며칠 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들이 그 선율을 따라 천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처음엔 몇 명뿐이었지만, 어느새 나처럼 멈춰 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박수조차 없었다.
우리는 그저 말없이 서서, 한참을 귀 기울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곳엔 작은 공연장이 생겨 있었다.
연주는 길지 않았다.
연주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사람들은 다시 흩어졌다.
말없이 모였다가, 말없이 흩어지는 그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 음악이 가끔 떠올랐다.
똑같은 길을 걸을 때면, 혹시 오늘도 누군가 그 자리에 서 있을까.
그런 기대감이, 걷는 발걸음에 조용히 묻어나곤 했다.
익숙한 길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모퉁이마다, 혹시 또 다른 작은 선물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