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짧은 영상 하나를 보았다.
먹음직스러운 소시지를 눈앞에 둔 강아지. 허리에 묶인 줄은 커다란 원기둥을 거의 한 바퀴 가까이 감고 있었고, 끝에는 소시지가 매달려 있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어째서인지 삶의 역설을 보여주는 듯했다.
본능에 충실한 강아지는 눈앞의 먹이를 향해, 가장 짧고 효율적으로 보이는 직선 경로를 택해 힘껏 달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줄은 원기둥에 팽팽하게 감겨들 뿐, 둘레를 헛되이 맴도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간절함이 더해질수록, 필사적인 움직임은 제자리걸음으로 변질되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마음속으로 너무나 쉽게 정답을 외쳤다. '반대로 돌아야지!' 먹이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외면하고 반대편으로 도는 것. 그래야 비로소 팽팽했던 줄이 느슨해지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 '정답'을 생각해 보니, 그것은 지독하게 비이성적인 요구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뛴다는 것. 줄이 느슨해지는 기미를 발견하기 전에, 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불안을 온전히 감수해야 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본능과 익숙함을 거스르며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하는 신뢰의 행위였다. 논리적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 불안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은 이 짧은 영상 속 딜레마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고, 나를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있다. 열심히, 독하게 '직진'하지만, 이미 줄이 엉켜버린 상태라면 그 모든 노력은 헛된 궤도를 맴돌 뿐이다. 탈출해야 함을 어렴풋이 느낀다. 잠시 멈추거나, 하던 일을 내려놓거나, 방향을 180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반대로 돌기'를 주저한다. 왜일까?
반대편으로 돈다는 것은,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 비효율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원하는 것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뿌리 깊은 불안감을 감내해야 하는 역설적인 행위다.
성공은 늘 가장 빠르고 팽팽한 직선 경로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때로는 잠시 멀어지는 뒷걸음이야말로 막힌 매듭을 풀고 나아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 수 있다. 짧은 영상을 보며, 나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상기하게 되었다. 어쩌면 진정한 용기란, 앞을 향해 질주하는 강인함이 아니라, 때로는 등지고 잠시 돌아설 줄 아는 지혜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