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의 착각

by 새벽의숲

소개팅이 끝나자, 그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화는 겉돌다 흩어졌고, 심장은 단 한 번도 흥미로운 박자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는 카페를 나서며 머릿속으로 예의 바르지만 단호한 거절의 문장을 고르고 있었다.


"저..."


그가 문을 열기 직전, 그녀가 그를 붙잡았다.


"혹시... 연락처 주실 수 있으세요?"


그는 당황했다. 먼저 연락처를 묻는 그녀의 의외의 용기에 말을 잃었다. 거절할 타이밍을 놓친 그는 멍하니 휴대폰을 건넸고, 우리는 어색하게 나란히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그 짧은 10분 동안, 분위기가 급변했다. 소개팅 자리의 어색한 공기가 사라지자, 그녀는 의외로 유쾌하고 솔직했다. 방금 전의 만남이 얼마나 어색했는지에 대해 장난스레 투덜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역 입구에 다다랐을 때, 그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한 번 더 봐도 괜찮겠는데."


본격적인 연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조심스러운 탐색전을 빠르게 넘어섰다. 일상의 사진이 오갔고,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관계는 뜨겁게 타오르기보다 미지근한 온도로 데워지는 중이었다. 그는 이 편안함이 과연 '연애 감정'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함'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하루 동안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아무런 알림이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보며, 그는 초조함과 해방감을 모두 맛봤다. 그리고 그날 밤, 드디어 화면이 빛났다.


[오늘 왜 연락 안 했어요? 나 안 궁금해요?]


그녀의 서툰 투정은 그에게 묘한 승리감과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이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했다.




우리는 말을 놓았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가 어색했다. 그녀는 그걸 귀신같이 알아챘다.


[근데, 내 이름은 한 번도 안 불러주네요?]


삐친 듯한 이모티콘과 함께 날아온 메시지. 그는 결국 항복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도 그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그렇게 '썸'이라는 관계의 한복판으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어깨가 닿아도, 함께 걷다가 손이 스쳐도, 가슴을 뛰게 할 스파크는 없었다. 그저 편안하고, 익숙했다. 이 무덤덤함이 그를 미치게 했다.


이 감정은 '계륵'이었다. 그만두기엔 그녀의 다정함과 그간 쌓아온 시간이 아까웠고, 가지기엔 이성적인 끌림이라는 결정적인 무언가가 부족했다.




그의 감정 소모는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평일 저녁, 우리는 오랜만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가 레스토랑을 예약하려던 참이었다.


[미안한데, 오늘 테니스 강습 첫날이라서요. 저녁 식사 대신... 그냥 퇴근길에 같이 지하철 타고 가면 안 될까요?]


그는 알겠다고 답장했지만, 속이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 그는 그녀의 일상에서 '테니스 강습'보다 후 순위였다. 그날의 퇴근길은 유난히 길었다.


그럼에도 일상의 연락은 이어졌다. 사진이 오갔고, 안부를 물었다. 그는 이 관계를 지속해야 할지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주말. 이번 일요일만큼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금토 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혹시 오늘 약속 미뤄도 될까?]


그는 휴대폰을 든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피곤하겠지. 이해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테니스 강습'과 '여행 피로'라는 단어들이 '나와의 약속'을 가볍게 밀어내는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나는 2순위였다. 아니, 3순위일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나는, 그녀의 루틴과 컨디션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나는, 그녀의 삶에 잘 스며든, 편안하고 좋은 '익숙함'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의 감정 소모는 끝났다. 더 이상 이 애매함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이성으로 가장 단호한 문장을 가다듬었다.


[여행 다녀와서 피곤하겠다. 푹 쉬어. 고민을 좀 해 봤는데, 난 이 애매한 관계를 더는 이어가고 싶지가 않네. 그만 만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 같아.]


그의 심장이 마지막으로 크게 울렸다. 그녀의 답장이 날아올 차례였다. 그리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그가 예상했던 모든 문장과 전혀 다른 형태로 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럼.]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의 프로필을 눌렀다. 회색 프로필. 차단이었다. 그는 멈추어버린 대화창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모든 고민과 감정의 무게가, 저 '그래 그럼'이라는 네 글자와 함께 증발해 버렸다.


그녀는 단 한순간이라도 진짜 마음을 쓴 적이 있기는 한 걸까. 그 무미건조함이 그녀의 속마음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게 아닐까. 그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지독한 감정 소모가 끝난 자리에, 쓰라린 동시에 서늘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그래, 어쩌면 처음부터 이 모든 건 나 혼자만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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