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몬첼로가 유난히 쓰게 느껴지던 날

by 새벽의숲

오후 3시, 온갖 듣기 싫은 소리가 어김없이 내 귀에 울려 퍼졌을 때, 나는 비로소 오늘이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라는 것을 실감했다. 특별히 슬픈 일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밖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들이 무색하게, 내 안의 공허함은 커지고 시간은 끈적하게 달라붙어 흘러갔다. 항상 반복되던 일상이 오늘따라 유독 뾰족한 지루함으로 나를 찔러왔다. 그것이 문제였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아무것도 하기 싫은 권태 사이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해보려 애썼다. 운동화를 신고 집 밖을 나섰다 돌아오기를 두어 차례. 하지만 산책이 가져다주어야 할 가벼운 바람이나 상쾌함은 무기력함의 두꺼운 장막을 걷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세상의 활기 속에서 나만 홀로 멈춰 서 있는 듯한 공허함만 커졌다.


결국 나는 현관 앞에서 더 이상 시도할 의지마저 잃은 채 방 안으로 뒷걸음질 쳤다. 무기력함은 자물쇠처럼 나를 집 안에 가두었다. 즐거운 일을 찾아보려 애써도, 머릿속은 제대로 맞춰지지 않는 라디오 채널처럼 지직거릴 뿐, 선명한 즐거움은 떠오르지 않았다.


거실을 서성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며칠 전 선물 받은 리몬첼로 병이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의 태양을 닮았다는 샛노란 레몬 술. 저걸 마시면 이 침잠한 기분이 조금은 밝아질까 싶었다.


유리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끈적한 노란 액체를 부었다. 기대와 달리, 입안에 머금은 술은 낯설었다. 리몬첼로는 본래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어야 했다. 하지만 혀에 닿은 액체는 톡 쏘는 알코올 향과 함께 지독히도 쓴맛을 냈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평소라면 뱉어내거나 입을 헹궜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잔을 내려놓는 대신, 입안에 감도는 그 쓴맛을 가만히 굴려보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딱 이 맛이었다. 달콤함을 기대하고 열어젖힌 하루가 결국은 지루함이라는 쓴맛으로 귀결되는 지금 이 순간. 이 술의 쓴맛은 나의 무기력함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쓴맛을 억지로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알싸한 통증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달콤한 척 꾸미지 않은 날것의 쓴맛. 그것을 온전히 내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품었을 때, 비로소 나는 이 지루한 하루를 견뎌낼 힘을 얻는 것 같았다.


빈 잔에 남은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침대에 몸을 맡겼다. 여전히 할 일은 생각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쓴맛을 삼켜낸 나는 조금 전보다 아주 조금은 단단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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