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삶에 대하여

by 새벽의숲

요즘 삶에 별일이 없다. 일을 끝마치고 침대에 누워 천장의 작은 생채기를 바라본다. 몇 년 전과 똑같은 위치, 똑같은 모양이다. 마치 내 삶이 이 생채기처럼 박제되어 멈춰버린 것만 같다. 잠시 누워 있다가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선다. 하루를 마칠 때에는 내일도 다를 바 없을 거라는 확신 속에 잠이 든다.


누군가는 이 '별일 없음'을 평온함이라 부르며 안도할 것이고, 누군가는 견딜 수 없는 권태라 부르며 몸서릴 칠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해 있다.


이 미묘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쩌면 평온함이란, 폭풍우를 지나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른다. 치열한 고통과 불안 속에 있었던 사람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는 그 자체로 구원이다. 그들에게 이 고요함은 휴식이며, 상처가 아물어가는 치유의 시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덜 힘들어서,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삶이 너무 힘들었던 사람들은 별일 없음에 평온함을 느끼고, 그 평온함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결국 권태가 되어버리는 것일까.




지금의 나는 멈춰버린 시계 속에 갇힌 기분이다. 크게 불안하지도 않고,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지도 못한다.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 상태는 평온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중력 상태'에 가깝다. 발버둥 쳐도 위로 올라가지도, 아래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허공에 붕 뜬 채로 시간만 흘려보낸다.


이 지독한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부러 힘든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 걸까. 마치 매운 음식을 먹어 혀의 통각을 자극하듯, 고생스러운 여행을 떠나거나 감당하기 벅찬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만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는 걸까.




실제로 나는 움직여 보았다. 산책을 하고, 운동을 배우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하지만 그 모든 행위는 즐거움이 아닌 의무였다. '이걸 하면 나아지겠지'라는 기대는 '이걸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라는 냉소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억지로 만든 자극은 잠시 뇌를 깨울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더 짙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만약 그렇게 모든 것을 시도해 본 후에도, 다시 이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다면 어떡해야 하나. 결국 권태는 내 삶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것일까.




영화나 소설이었다면 이쯤에서 극적인 사건이 터지거나, 주인공이 마음을 고쳐먹고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고, 천장의 얼룩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박혀 있다.


억지스러운 긍정은 관두기로 했다.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조차 또 다른 노동일뿐이다. 빈방은 그저 빈방이다. 여백의 미를 운운하며 아름답게 포장해 봤자 내 공허함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드라마틱한 반전도, 갑작스러운 깨달음도 없다. 나는 그저 이 밍밍하고 건조한 시간을 씹어 삼키며 내일을 기다릴 뿐이다. 이 무기력함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만이, 지금 내게 남은 유일하고 선명한 감각이다.


그래도 모든 계절이 그렇듯, 이 지루한 시간도 언젠가는 분명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또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이 시간을 담담히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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