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꺼내는 마음

by 전이야

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

어느 순간부터

누구에게 얼마나 어느 정도를 말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누가 묻기만 하면

괜히 말을 앞질렀고,

내가 먼저 결론을 내줘야

상대도 편해질 거라 여겼다.

아이의 발달이 남다르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해명과 변명이 함께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오며

알게 된 게 있다.

아이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게 만드는 건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이 놓이는 방식이라는 걸.


누군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음 문장을 찾았고,

누군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표정부터 바뀌었다.


반대로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이어지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더 말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사람.

그 차이가

나에게는 컸다.

그래서 나는

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

상대를 고르게 되었다.

정답을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이 길어져도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아도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굳이 말을 다 꺼내지 않아도

마음이 혼자 남겨지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큰 안도인지

모른다.

가까운 사람이

아이의 발달을 두고

조심스럽게 걱정을 꺼낼 때,

그 순간은

조언을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라

용기를 내어

말을 시작한 자리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건넨다면,

나는

이렇게 곁에 있고 싶다.


위로가 될 만한 문장을

급히 찾지 않겠다.

분위기를 밝히려고

말을 덧붙이지 않겠다.


대신

그 사람이 말을 끝낼 때까지

자리에 머울러 있겠다.

“그래서 네 마음은 어때?”

“그 이야기, 조금 더 해도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앞날을 대신 예단해주지 않고,

지금 느끼는 마음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로

이야기를 닫아버리지 않는 것.

혹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그대로 말해도 좋겠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네.”

“사실 잘 모르겠네. 그래도 네 얘기는 계속 듣고 싶어.”

이런 솔직함은 오히려

거리를 두는 말이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가 된다.

아이의 발달을 걱정하는 시간은

늘 혼자만의 싸움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 시간을 버티게 하는 건

결국

아주 소수와의 관계다.

나는 그 사람들 덕분에

내 걱정을

끝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도망치지 않았고,

서둘러 덮지 않았고,

내 감각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가끔,

누군가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때 필요한 건

그 마음을 꺼내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일이라는 걸 알 것 같다.


답을 모르는 채로

함께 앉아 있는 일,

그 불편함을

서둘러 없애려 하지 않는 일.

아이의 속도를 재단하지 않고,

엄마의 마음을 대신 정리하지 않고,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질 수 있도록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아마

정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 정도의 곁이면

누군가에겐

잠시 숨이 고를 수 있는

쉼이 되어줄 것이다.

내 곁에도 그렇게

내 마음을 꺼내어 주던 사람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이미 있기를.


아직 없다면

마음을 꺼내도 괜찮은 자리를

천천히 만들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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