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만 조금 실망한 알혼섬 북부 투어

다행히 야경은 건졌어

by 조재현

2019/12/22
친절한 중국인 친구들은 나를 위해 투어까지 예약해줬다. 우리를 태우고 갈 푸르공(몽골, 시베리아에서 주로 쓰는 승합차)의 기사님께 돈을 드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차에는 나를 뺀 5명의 중국인이 있었다. 알혼섬에는 중국인이 많은 것 같다. 알혼섬 북쪽의 국립공원으로 우리는 간다. 비포장도로지만 심하게 덜컹거리지 않는 길을 푸르공이 달린다. 북부 투어가 시작됐다.

우리를 태워 준 푸르공



첫 번째 뷰포인트에 왔다. 차에서 내렸는데 눈이 많이 날린다. 그리고 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진 포인트에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200명의 말을 듣는데 전부 중국인이다. 여기도 중국인, 저기도 중국인. 그들을 제외한 외국인은 나밖에 보이질 않는다. 여긴 중국인가 러시아인가?

북부투어 처음으로 간 곳.



두 번째, 세 번째 포인트도 예쁘긴 했지만 기대만큼 좋진 않았다. 겨울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바이칼 호수의 장관을 느끼고 싶었는데 눈으로 만들어진 경치만 볼뿐이다. 이럴 거면 외국 안 나가고 강원도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푸르공을 타고 가는 북부투어


점심시간이 돼서 소나무 밑에 긴 벤치로 갔다. 기사가 푸르공에서 나가라는 손짓을 하면서 "런치! 런치!"라고 한다. 밖에 나갔는데 다른 푸르공을 타고 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점심인 듯 한 전통 수프와 빵을 먹고 있었다. 거기에 도시락라면까지 먹고 있다. 기사가 여기로 손짓하면서 런치라고 했으니 저걸 먹어도 되겠지? 나는 하나 남은 도시락에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런 나를 이상하게 여긴 중국인 한 명이 내게 혼자 왔냐고 중국어로 물었다.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워 한구어런"을 연신 말했다. 그러니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하더니 아무 말 안 한다. 이상하다고 느껴서 우리 푸르공을 열었는데 기사가 밥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다른 일행 음식을 먹은 것이다. 그 일행들이 자신들의 푸르공을 타고 갈 때까지 잠시 도망쳐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 돌아와 진짜 내 밥을 먹었다.

밥 먹는 곳에서 찍은 것.

몇 곳을 더 둘러보고 북부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같이 온 중국인 친구들도 기대한 거랑 달라서인지 내일 알혼섬을 떠나지만 무리하면서 남부 투어를 신청한다. 나는 뭐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르쿠츠크로 돌아가야지.

일몰쯤에 찍은 무당바위
북부투어 마지막에 찍은 장관

내 방으로 돌아와 다시 생각해봤다. '알혼섬을 다시 올 거라고 장담 못하는데 돌아가면 너무 아쉽잖아. 바이칼 봤는데 얼음 장관은 보고 돌아가야 되는 거 아니야?' 한 시간 정도 고민했다. 고민보다 고다. 나는 리셉션에 가서 하루 더 연장하고 남부 투어를 예약했다. 이르쿠츠크 호스텔에서 예약한 돌아가는 버스도 하루 미뤘다. '그래 이렇게는 못 돌아가지' 그러고 있는데 알혼섬에 오기 전 호스텔에서 얘기를 나눴던 은조 누나가 바로 앞에 있는 것이다. 누나와 얘기하니 방금 체크인을 했다고 한다. 누나에게 북부 투어의 안 좋았던 점을 강조하고 남부 투어를 가면 얼음을 볼 수 있다고 유혹했다. 누나는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남부를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버스를 타고 온 한국인 남자가 있는데 물어보자고 한다. 다른 숙소에 머무는 그는 잠시 후 니키타 하우스로 왔다. 나는 누나한테 한 것처럼 똑같이 유혹했다. 바로 리셉션으로 가서 예약한다. 나와 누나가 있는 라운지로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대훈'의 이름을 가진 25살의 그는 사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나와 똑같은 기종의 카메라를 쓰고 있었다. 사진 얘기를 한참 하고 밤에 같이 별 사진 찍으러 가자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숙소 뒤편에서 찍은 별사진.

8시쯤에 나가기 전 대훈 씨가 오늘 피곤하다고 못 가겠다고 카톡이 왔다. 그냥 혼자 나갔다. 어제와는 다른 숙소 뒤편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미리 봐 둔 자리에서 카메라 세팅을 했다. 별들이 많아 오늘은 사진이 잘 나온다. 이참에 마을 야경도 같이 찍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마음에 든다. 한 시간도 채 안돼서 숙소로 돌아왔다.


p.s 갔다와서 들었는데 북부 투어는 색감이 예뻐서 여름에 가는 게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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