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5 일어나니 6시다. 술에 취해 하지 못한 양치를 시작했다. 라운지는 어제의 파티 때와는 다르게 깨끗하고 조용했다. 태블릿을 가져와 밀린 글과 사진 작업을 했다. 9시쯤에 밥을 먹었다. 호스텔에 쌀이 공짜여서 냄비로 밥을 지었다. 그런데 불이 세서 시간이 조금밖에 안 지났는데도 밑이 살짝 탔다. 윗부분 밥을 살리고 냄비를 다시 씻어서 지었다. 탄내는 다행히 안 난다. 삼겹살로 만든 베이컨을 구웠다. 도시락 라면을 만들어 같이 먹었다. 면을 다 먹고 밥까지 말아먹었다. 김치만 있으면 딱인데.
오후에 유명하다는 '모스크바 개선문'을 가봤다. 여긴 이르쿠츠크인데 왜 모스크바인진 모르겠다. 걸으면 15분 정도라길래 도시 구경할 겸 나갔다. 많이 춥다. 전광판에는 -14도라고 적혀있다. 그래도 눈 덮인 도시는 예쁘다.
-14도를 가르키고 있는 전광판. 많이 추웠다.
가는 길 왼쪽에 공원이 있었다. 거기에는 군인들이 제식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광경이라 가까이 가봤다. 얼굴이 보이는데 많이 앳되다. 뒤에는 교관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뭐라고 말한다. 앳된 얼굴의 입 사이로 김이 나오고, 교관의 구령에 맞춰 다리를 허리까지 들어 올리면서 제식하는 모습이 짠했다.
추운 날씨에 제식 연습을 하는 어린 군인들. 맘이 짠했다.
개선문이 있다는 강 근처로 왔다. 강 위에 물안개가 낀 모습이 신비롭다. 개선문이 보인다. 예쁘다. 그것을 보고 많이 추워 후딱 호스텔로 돌아왔다. 빨리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있어야지.
이르쿠츠크 강의 물안개. 신비롭다.
강가에 있던 동상
모스크바 개선문
조금 있다가 대훈이와 은조 누나가 돌아왔다. 밥도 못 먹어서 나가서 뭐 좀 먹겠다고 한다. 나는 점심에 배 터지게 먹어서 안 따라갔다. 8시쯤이 돼서 그들과 같이 숙소 옆 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오늘 시베리아 열차를 다시 타니깐 먹을 걸 많이 사둬야지. 나와 같은 열차를 타는 은조 누나도 한 바구니 장을 봤다. 장을 보고 호스텔에서 밥을 다시 지었다. 3일 치 먹어야 되니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살짝 탔다. 아까처럼 복구했다. 은조 누나도 나눠주려고 해서 잘 만들려고 했는데 약간 아쉽다.
개선문 근처에서 눈을 치우시던 공무원 아저씨. '쓰바시바'
어제 같이 놀았던 한국인 한분이 우리에게 와인을 권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계속 권해서 한잔 마셨다. 오늘 떠나지 않는 대훈이는 많이 마신다. 많이 신나 보인다. 기차 시간이 11시 35분이라서 10시까지 놀고 막심을 불렀다. 몇 번 안 잡히다가 겨우 잡혔다. 짐들을 택시에 넣고 역으로 갔다.
눈이 쌓였던 이르쿠츠크의 어떤 공원.
역으로 가서 티켓 창구로 갔는데 거기서는 티켓 발권을 안 한다는 것이다. 누나가 역 직원이랑 얘기하는데 밖으로 나와 다른 건물에서 티켓을 끊어야 한다고 한다. '하아' 일이 복잡해진다. 옆에서 은조 누나가 안절부절못한다. "누나 한 시간이나 남았어요 괜찮아요." "아 나는 이러면 진짜 불안해 죽겠어. 빨리 기차에 타고 싶어." 빨리 찾아야겠다.
이르쿠츠크의 어느 성당.
티켓을 발권해주는 건물에 도착했다. 번호표를 받았는데 15명 정도 남았다. 기다려도 되겠다 싶었는데 후딱 사람이 빠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한명하는 10분 정도 질질 끈다. '진짜 이러면 못 탈 거 같은데...' 몇 분 기다리다가 아저씨 두 분이 키오스크로 발권하는 걸 보고 그곳에서 표를 뽑았다. 은조 누나가 내게 잘 모르겠다고 옆사람한테 영어로 물어보라고 한다. "누나! 누나 러시아 할 줄 아는데 직접 하시면 되잖아요ㅋㅋ" 들리는 건 괜찮은데 말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 걸기가 싫다고 하신다. 알혼섬에서 운전기사님과 대화한 거 보면 아닌 거 같은데 지금 조급해져서 많이 당황하신 거 같다.
도시에 전시된 옛날 무기. 소련 느낌이 많이 난다.
표를 받고 우리는 처음의 건물에 돌아가 기차에 안전하게 들어왔다. 이제 다시 열차 생활 시작이다.
p.s 열차가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젊은 부부와 아기가 탔다. 짐 정리하고 아기를 재우고 남편이 자신인 2층에 올라가기 전에 계속 껴안고 뽀뽀한다. '고마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