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31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후에도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은 느낌.
오늘 아침부터 호스텔을 옮기는 대훈이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밤에 불꽃놀이를 같이 보자고 약속했다.
대훈이 숙소가 있는 역. 예쁘다.
저녁에 카톡이 왔다. 전에 있던 호스텔에서 친해진 두 명의 한국인 친구들과 붉은 광장에 있다고 나오라고 한다. 그곳으로 향했다. 광장 가는 길에 인파가 많았다. '이럴수록 소지품에 조심해야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과 지갑을 계속 신경 쓰면서 걸었다. 밥을 먹고 자리에 일어나는 그들과 합류에서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이것을 보고 있을 때였다!!
락 공연을 하는 곳이 있어 가봤다. 나쁘지 않다. 또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러시아 국기가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해서 사진 찍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보려고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없다...!' 주머니의 허전함과 뭔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휴대폰이 사라졌다. 다른 주머니들도 찾아봤는데 없어진 것이 맞다. "휴대폰 없어졌다" 옆에 있는 대훈이에게 말했다. "에이 설마...? 진짜요? 한번 왔던 길로 다시 가봐야요." 우리는 왔던 길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확인했는데 없다. 누군가가 주머니에서 빼간 것이 맞다.
이걸 찍다가 휴대폰을 도난당했다.
이상한 느낌이 잠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후에 이상하게 별생각이 안 든다. 한국시간으로는 새해인데 딱 거기에 맞춰져 휴대폰이 사라진 것이 신기하다. 액댐한 기분이 든다. '에이 다시 하나 사면되지 뭐.' 이미 내 곁에서 사라질 물건이 제때를 찾아 떠난 것 같다. 그러면서 '좀 귀찮아졌네 썅' 이생각만 든다. 그래 이런 걸 어려운 말로 하면 '달관'이라고 하겠지.
그래도 앞으로의 대책을 세워야 하니 호스텔로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같이 놀았던 동행분들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든다. 대훈이도 전에 있는 호스텔로 잠시 가기로 했다. 동행분들이 오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넘어가는데 짐을 챙겨야 한다고 한다. 이분들이 떠나고 11시쯤에 만나서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고 했다.
소련느낌이 나는 공장
호스텔로 돌아와 태블릿으로 휴대폰 가격과 여행자보험금 청구를 어떻게 하는지 알아봤다. 휴대폰은 내일 근처 통신사에서 사고 여행자보험금은 경찰서에서 도난 확인서만 받으면 된다. 의외로 간단했다. 그래도 정신이 없으니 잠깐 자고 일어나기로 했다.
불꽃놀이 보러가는 중에 본 동상,
10시 반쯤에 대훈이가 인스타로 연락이 왔다. 지금 나가자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니 동행분들과 같이 있었다. 이분들을 지하철역까지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작별을 했다. 하늘을 보니 비가 많이 내린다. 겉옷이 꽤 젖었다. 가기가 귀찮아졌다. 어렸을 때는 마지막 날이나 새해 첫날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그냥 지나가는 날로 여기고 사는 것 같다. 하지만 대훈이는 불꽃놀이를 보겠다는 의지가 강렬했다. 마지못해 따라갔다.
해피뉴이어 축제
대훈이가 알려준 사람이 적다는 공원에 갔다. 거기도 사람이 많은 건 매한가지다. 들어가니 공연을 한다. 나쁘진 않았다. 러시아 말로 진행해서 못 알아들을 뿐. 폰으로 영상을 찍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폰은 없었다. 습관이 되어 버린 행동이다. 공연과 지금에 집중했다. 사람들을 훑어봤다. 그들의 눈은 공연이 아닌 영상을 찍고 있는 휴대폰을 보고있다. 잠깐 나를 반성해 본다. 휴대폰이 없으니 지금에 충실하게 되는 걸 느낀다. 그것이 새해 선물인가? 휴대폰 사지 말까 고민했다.
공연을 보고 있는 사람들.
12시가 되기 얼마 전에 불꽃이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겼다. 옆에서 대훈이는 카톡을 열심히 한다. 아마 여기 불꽃놀이하는 걸 아는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있겠지.
사진찍는 대훈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새해가 되어 불꽃이 터진다. 성 바실리 성당 옆으로 불꽃들이 빵빵 터지는 게 이쁘긴 이쁘다. 아까의 귀찮음을 이기지 못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불꽃놀이가 5분 정도만 하고 끝나버린다. 사람들도 빠져나간다. 싱거웠다. 그런데 더 먼 곳에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한다. 사방에서 터지는 거였다. 오늘 좋은 구경 했다.
새해의 불꽃놀이. 성바실리성당과 잘어울린다.
숙소로 돌아가니 사람들이 파티를 한다. 잠깐 참석했는데 러시아 말로 얘기하고 몸에서 피곤이 쏟아져서 침대로 몰래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