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30 결론부터 말하면 난 모스크바와 사랑에 빠졌다. 짝사랑일 수도 있다만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치자.
은조 누나가 어제 지하철 투어를 해보라고 권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은 많이 예뻐서 역들을 투어 하는 상품이 있기까지 한단다. 네이버에서 예쁜 지하철역들을 찾았다. 순환을 하는 5호선에 예쁜 역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약간 떨어져 있는 몇몇 곳들. 시간이 꽤 있으니 많이 돌아다녀야지.
호스텔에서 나왔다. 밖은 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길 위에는 눈이 녹은 물 때문에 질퍽하다. 빨리 역으로 가야지. 역 안에는 눈이 녹은 물이 많이 들어와서 많이 지저분했다. 깊은 지하철역을 빠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역이 서서히 따뜻해진다. 내복에 롱패딩까지 입은 나는 땀이 서서히 나기 시작했다. 지퍼를 풀고 옷을 잡고 흔들어 몸 안으로 통풍이 되게 했다. 하지만 더웠다.
가장 화려했던 '콤소몰스카야'역
처음으로 기차에서 내렸던 역인 '콤소몰스카야'역으로 갔다. 어젠 자세히 안 봐서 몰랐는데 노란 천장이 궁궐 같은 느낌을 만들어 준다. 1분 만에 들어오는 지하철과 그것을 바쁘게 타는 모스크바의 시민들이 아니라면 이곳을 지하철 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하철이 역에 설 때마다 내려서 잠시 감상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했다.
'도스토예프스카야'역에 있는 소설 '죄와벌'의 장면.
러시아 문학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와 문학작품의 장면을 새겨놓은 '도스토예프스카야'라는 역에 오니 배가 고파졌다. 끼니를 해결하러 나가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얼굴이 새겨진 타일 앞에서 색소폰을 든 음악인이 연주를 한다. 세상에 이런 예술로 채워진 지하철역이 있을까? 나는 선뜻 지갑에 있는 잔돈 20루블을 꺼내 기부했다. 더 주고 싶었지만 잔돈이 없으니 패스했다.
'도스토예프스카야'역에서 색소폰을 불고 계시는 아재. 멋있습네다.
역에 나와 음식점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아까 색소폰으로 연주했던 'Autumn Leaves'를 유튜브 음악으로 들으면서 걸었다. 흩날리는 눈에 약간 어둑해진 오후 3시, 거기에 소련의 느낌이 나는 건물들은 그 노래랑 잘 어울려 마치 내가 영화의 한 장면에 온 듯한 느낌을 줬다. 돌아다니다 먹을 곳이 없어서 반대편 역 입구에 있던 작은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한 조각 사 먹었다. 치즈의 맛이 강렬해서 억지로 삼켰다. 피자를 배 속에 넣고 다시 역 투어를 시작했다.
감상하세요.
다시 역으로 들어가는데 색소폰 소리가 같은 자리에서 들린다. 아까보다 더 아름답게 들린다. 지갑 속에 있는 50루블을 꺼내어 색소폰 가방에 넣었다. '아재요. 이걸로 맛있는 거 사드슈.
동상이 멋있었던 역. 이름이 기억안난다.
또 다른 역들을 들렀다. 천장마다 걸려있는 색이 예쁜 샹들리에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역마다 다른 느낌의 구조물들이 예술이다. 지하철역마저 아름다운 모스크바와 나는 사랑에 빠졌다. 이런 사랑스러운 도시 위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조명 예쁘다.
두 시간 정도 더 투어를 했고,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 숙소로 돌아갔다. 오는 길에 대훈이가 연락이 왔다. 분명 이르쿠츠크에서 기차를 타고 1월 1일에 와야 되는데 벌써 왔다. 이르쿠츠크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와버렸다고 한다. 오늘 만나자고 했지만, 몸상태가 안 좋아 내일 보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