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의 기다림

오줌참기는 참 힘들다.

by 조재현

2020/01/05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에르미타주'박물관을 가기 위해 일찍 나왔다. 10시 반이 오픈이라 11시쯤에 박물관으로 갔다. 걸어서는 10분 정도 걸렸다. 도착하니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있다. 몇 분 안돼서 입구로 들어갔는데 또 입구가 있다. 왜 이렇게 긴 거냐? 키오스크가 옆에 있다. 저걸로 끊으면 금방 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국제학생증을 가지고 있어서 줄에서 기다리면 공짜로 갈 수 있어서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키오스크는 할인이 되지 않는다.) 이대로 기다리면 한 시간 정도면 들어갈 수 있겠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줄이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줄 옆으로 키오스크에서 표를 산 사람들과 단체관광객들이 계속 들어간다. 저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휴대폰에서 본 이곳의 온도는 0도였다. 발이 많이 시리다. 군대에서 겨울에 위병소 근무한 게 떠오른다. 땅바닥에 발을 툭툭 때렸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행동을 해서 인지 말발굽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2시가 되었다. 줄을 선지 3시간이 된 것 같다. 슬슬 오줌이 마렵다. 근처에 간이화장실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라면 먹고 오지 말걸. 좀만 더 참아야겠다.

3시가 됐는데도 줄이 빠지질 않는다. 아 그냥 나가버릴까? 줄 밖 20m 정도 앞의 쓰레기통 위에 버려진 커피 컵이 보인다. '저거 들고 건물 쪽으로 몸 돌려서 싸버릴까? 어차피 여기 외국이니깐 사람들이 날 기억도 못할 거야!' 화장실이 급해서인지 정신줄을 놔버렸다. 앞에 한국인 2명이 줄 서고 있어서 간신히 제정신을 차렸다. 속으로 애국가를 몇번을 불렀는지 모르겠다.

IMG_9612.jpg 4시간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나니깐 줄이 빠지기 시작한다. 빨리 건물 안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 그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앞에서 줄 서고 있는 한국인들을 밀면서 들어갔다.
"아! 밀지 좀 마세요!"
"미안합니다." 나는 사과를 했지만 어쩌겠는가? 화장실 때문에 이미 눈이 돌아가버린걸.


건물 안에 들어가니 매표소를 둘러싸면서 줄이 있다. 하아... 여긴 밖보다 더 복잡하다. 미치겠네 진짜. 4시가 조금 넘어 공짜표를 간신히 나와서 얼른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볼일을 보니 정신이 돌아온다. 죽다 살아났다.

IMG_9646.jpg 박물관 복도

전시관을 들어가는 문 앞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러시아 제국 시절 궁궐이어서 화려하고 크다. 온통 황금빛이다. 몇 군데의 방을 둘러봤는데도 다 그러하다. 내가 왕이었으면 이곳에 눈부셔서 못 있었을 것이다.

IMG_9621.jpg 표토르대제와 지혜의 여신

황궁 전시실은 꼼꼼히 둘러보고 여러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는 나머지의 방들은 설렁설렁 훑어봤다. 이곳에선 황궁 전시실이 최고인 듯하다. 6시에 박물관이 문을 닫아 시간에 맞춰 나왔다.

IMG_9629.jpg 조각상


밤엔 '아냐'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서 은조 누나가 추천한 '엄마네'라는 식당에 갔다. 감자탕이랑 김밥, 돈까스를 시켰는데 맛이 상당히 맛있다. 양도 어마어마해서 먹다가 남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며칠 더 있었으면 또 왔을 것이다.

저녁을 해결하고 같이 유럽식의 펍 느낌이 나는 곳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아냐'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녀는 꿈이 많다. 지금 배우고 있는 드럼을 잘해서 밴드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중국어를 배워서 거기서 취직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 꿈이 많은 건 좋은 거지. 12시까지 마시고 '아냐'를 집에 바래다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이곳을 뜬다. 러시아에 20일 정도 여행한 것 같다.

p.s 여행 끝난 줄 알았죠? 한국 아직 안 돌아갑니다. 다른 곳으로 갑니다!

IMG_9635.jpg 궁전 샹들리에
IMG_9626.jpg 박물관 복도
IMG_9655.jpg 오케스트라 연습하는 악단
IMG_9632.jpg 프랑스 스타일로 장식된 방
IMG_9620.jpg 공작석으로 장식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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