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8 파리를 떠나는 날. 3일간 있으면서 느낀 게 있다. 지하철역은 더럽고 사람들은 약간 질서 없었다. 약간의 더러움, 약간의 무질서함을 보며 파리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겠다만, 이런 것들이 자유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들 다르다. 백인들도 눈이 파란 백인, 갈색인 백인 등 흑인도 완전 까만 흑인, 약간 갈색빛을 띠는 흑인, 머리는 짧거나 길거나... 중동 사람들, 아시아인들. 파리는 인종의 용광로다. 다양함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도시. 그래서 파리가 자유와 예술의 도시인건가?
파리의 상징 에펠탑.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와인이 유명한 '보르도'로 향한다. 원래는 예정이 없던 곳이었다. 바로 까미노 순례길을 가려고 했는데 순례자 사무소가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나중에 알아보니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의 일요일에는 무엇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순례길 출발 도시인 '생장'에서 꽤 가까운 '보르도'에 월요일(2020년1월 20일)까지 묵고 떠나기로 했다.
보르도. 와인이 유명한 곳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서 도시가 예뻤다.
지하철에 버스까지 타서 기차역에 왔다. 중간에 반대편 버스를 타버렸다. 15분 정도가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시간을 봤는데 다행히 출발 10분 전에는 도착할 것 같았다. 잘못탄 버스에서 내렸는데 공기가 차가웠다. 상쾌하다. 하지만 300유로를 잃어서인지 내 마음은 상쾌하다기 보단 차갑다.
기차는 제시간에 탔다. 기차가 출발하고 눈을 감았다. '이런 멍청한 자식' 돈을 잃은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눈을 감고 머리를 창문에 계속 박았다.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아까 도착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춰놓은 것이다. 머리를 박다가 잠든 모양이다.
기차는 잘 도착했다. 플랫폼을 빠져나와 숙소를 찾으러 갔다. 트램을 타면 금방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짐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호스텔이 있던 골목길
아직 아침이었지만 아침밥은 먹지 않겠다. 야바위를 한 나 스스로에게 벌을 줘야 된다. 대신에 점심을 왕창 먹어야겠다. 뷔페를 알아봤다. 초밥뷔페가 있었는데 15유로 밖에 안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오래 지나도 오지 않는다. 근처에 atm이 있었다. 다시 300유로를 뽑았다. '하아... 내가 야바위만 안 했어도 지금 안 뽑는 건데...'후회가 밀려온다.
뷔페를 찾으러 가는 길.
뷔페집을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있다. 점심시간이 끝나 저녁에 다시 연다고 한다. 아... 엄청 고생해서 왔는데 헛수고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가 걸려 다른 곳으로 왔는데 매한가지였다. 포기하고 주변에 케밥집에서 끼니를 때웠다. 밥 먹으러 나올 때 패딩은 입지 않고 나왔는데 너무 추워서 호스텔로 돌아갔다. 침대에 잠깐 누웠는데 그대로 자버렸다.
6시쯤에 일어나 순례길에 필요한 장비를 사러 '데카트론'으로 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을 걸었다. 어제도 생각했지만 돈을 잃은 나 대신 하늘이 울어주는 것 같았다. 한숨이 크게 나왔다.
보르도의 거리들
'데카트론'은 시내 외곽지역에 있는데 엄청나게 컸다. 없는 물건이 없었다. 신나게 장을 봤는데 문을 닫을 시간쯤에 와서 아쉽게 끝냈다. 호스텔로 돌아와 장비를 확인했는데 몇 개를 빼먹었다. 시내에 있는 데카트론은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고 하니 그곳에서 나머지 장을 봐야겠다.
저녁에는 호스텔에서 게스트들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외국인들이 얘기를 하는데 딱히 재밌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방으로 들어와 밀린 일지와 사진을 정리했다.
보르도의 야경
한 시간 정도 하니깐 피곤이 몰려와서 자려고 시도했다. 낮잠을 자서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그대로 2시까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제 그만 자야지.' 자기 전 화장실로 갔다. 변기들이 하나씩 있는 방처럼 되어있었다. 변기 칸의 문을 열었다. "어 뭐야!" 당황해서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등에 털이 많은 남자 한놈이 옷을 다 벗고 누군가와 뜨거운 애정행각을 하고 있다.
30분 정도가 지났다. 당사자들이 들어왔고 남자는 여자의 침대로 가서 또 뜨거운 행위를 한다.
규칙적인 박자와 숨소리, 쪽쪽거리는 소리.
그들은 그 소리를 달콤한 멜로디로 들리겠지만, 침대 건너편에서 듣고 있는 나는 화를 돋구는 소음으로 들린다. 마음 속에 어떤 분노가 치밀어올라 휴대폰 손전등으로 잠깐 비추었다. 그들은 당황해한다. 그 모습이 웃겨 키득키득거리면서 자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잠이 들면서 계속 한숨이 나는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