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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Feb 01. 2021

혼자만의 발걸음

감동을 느낀 1일

2020/02/08
오늘은 늦게 출발했다. 평소보다 짧게 걷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왔다. 비가 콸콸 쏟아진다. 평소 차림으로 걸어보았다. 도저히 안될 것 같다. 가는 중에 우비를 꺼내 입었다. 비를 맞으면서 걸으니 기분이 영 찝찝했다. 우비 안은 덥고 습하면서 겉은 비 때문에 젖어있다. 앞에서 조금 일찍 가던 유하가 서서히 멀어지더니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왠지 이제부터는 못 볼 것 같은 감이 왔었다.

비가 왔었다

오전 내내 비가 오더니 11시가 조금 넘으니 그치기 시작한다. 비 온 후의 하늘은 엄청나게 쾌청했다. 어떤 버스정류장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우비를 털어 다시 가방에 넣었다. 아침에 먹다 남아서 싸온 사과주스와 과자를 꺼내어 다 먹었다. 그것 때문일까? 가방이 무거웠는데 한결 가벼워졌다.

비가 그친 후 파란 하늘

맹세를 했었다. 걸으면서 노래는 듣지 않겠노라고. 걸어가면서 들리는 자연소리와 나의 생각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 옆을 지나가서 소음이 거셌다. 그냥 이어폰을 귀에 꼽고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오늘은 차도 옆을 많이 걸었다.

오늘 머물려던 '산마르틴'이라는 도시를 2시쯤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했다.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가면 다른 마을이 있다. 체력이 좀 남아서 거기까지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 배가 고파 바에 들러 토르티야와 콜라를 먹었다. 먹는 와중에 어제 만난 도건이(10살짜리 아이) 어머님이 카톡을 보내왔다. 자신은 산마르틴에 있는데 거기에 머무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더 간다고 했다. 유하도 카톡이 왔는데 자신은 '산마르틴'에서 머문다는 것이다. 이젠 헤어질 것 같은 예상이 맞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혼자 걸으니 좀 더 나에게 집중하면서 걸어야겠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다음 마을인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갔다. 머물려고 한 알베르게에 가보았다. 문이 닫혀있었다. 옆에 큰 바가 열려 있어 들어가 주인아저씨께 알베르게가 열리는지 물었다. 아저씨는 이 알베르게는 겨울이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여기 근처 문을 연 알베르게를 가르쳐줬다. 이름을 알아내어 찾아갔다. 문을 열려고 시도했는데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을 더하고 포기하려던 찰나, 동네 주민분이 나를 보시고는 알베르게 정문으로 안내해줬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작은 친절에 나는 감사함을 크게 느꼈다.

카미노

알베르게를 들어갔다. 주인아저씨는 나에게 방을 안내해줬다. 방안에 화장실도 있고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2명 더 왔는데 다 각방으로 넣어주신다. 오늘 내 도미토리는 나만의 공간이 됐다. 아저씨분의 배려에 감동이 샘솟는다. 저녁을 먹으러 알베르게에 붙어 있는 식당으로 나왔다. 아이들 10명 조금 넘게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텐션이 높은 게 정말 신나 보인다. '나도 저런 날이 있었는데...' 머리 깊숙이 박혀있던 기억을 꺼내 추억에 젖었다.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

식당에는 이미 40대로 보이는 아일랜드 여성분께서 식사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애피타이져로 믹스 샐러드를 시켰는데 양도 푸짐하고 맛도 괜찮아 보여서 같은 걸 주문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상당히 맛있었다. 야채와 토마토 거기에 옥수수와 참치까지. 식초를 뿌려먹으니 기가 막혔다. 앞으로도 이렇게 먹어야지. 메인 음식이 나왔고 와인과 같이 먹었다. 아일랜드 여성분과도 얘기를 오래 나누었다. 아일랜드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았는데 오랜만에 머리가 신선해진 기분이었다.

아마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에서 찍은 것일 거다

밥을 먹고 침대에 잠깐 누웠는데 그대로 자버렸다. 12시에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글을 썼다. 짐을 털어낸 듯한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잤다.

주인분께 너무 감사하여서 다음날 사진을 같이 찍었다.

-이날은 León에서 Hospital de Órbigo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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