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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Feb 04. 2021

유심은 늦은 밤까지 나를 고생하게 만들지

문제 해결을 해야되는 밤

2020/02/11
내리막길이 심한 날이었다. 고도를 알려주는 종이에서 봐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심했다.

오르막길

쌀쌀한 아침이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그런 듯했다. 조금 걸어가니 그래도 괜찮아졌다. 처음에는 오르막이 조금 있었다. 가끔씩 고도가 높았는데 그래도 무난했다. 문제가 되는 건 길이 뾰족한 돌과 바위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신발이 중등산화가 아니라 트레킹화라 밑창이 두껍지 않았다. 발이 많이 아프다.

가는 길에 보이는 일출
오르막길 바람도 심하다

'폰세바돈'이라는 마을을 지나니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내리막길로 펼쳐진 드넓은 광야와 중간중간에 있는 마을들이 보이는 광경은 순례길이 지루해진 나의 태도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등 뒤로 부는 바람까지 오늘은 운이 좋다.

여기는 내리막길

점심때쯤에 한참을 앞서간 유하가 자신이 식당에 있다며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줬다.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도착하니 유하는 햄버거를 거의 다 먹고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햄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똑같은 걸로 주문했다. 나쁘지 않았다.

이런 거 예쁘다
내리막길은 힘들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는 같이 걸었다. 계속해서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유하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게 내려갔다. 그에 비해 나는 천천히 내려갔다. 5년 전 지리산을 하산하면서 무릎을 다쳤다. 또 그렇게 다칠까봐 천천히 내려갔다. 내리막길이 끝난 마을에서 유하가 기다려줬다. 사소한 건데 고마웠다.

내리막길이 끝난 후의 마을

가는 길에 노상 테이블이 있었다. 거기에 어떤 서양 아저씨 두분이 얘기를 하고 있다. 그 옆에는 당나귀가 묶여있었다. 한 분은 마을 사람처럼 보이고 한 분의 모양새를 보니 카미노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저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에 신기했다. 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당나귀와 사진을 찍었.

당나귀 귀여웠다.

마을에 들어서니 벚꽃이 조금씩 피어있었다. 한국보다 약 두 달 정도 빨리 피는 것이다. 3월에 왔으면 꽃들이 만개해서 이 마을은 엄청 예뻤을 것이다. 마을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룹으로 돌아다니는 분들도 보였다.

벚꽃이 조금 펴있었다.

근처에 큰 마트가 있어서 장을 왕창 봤다. 오늘은 고기를 구워 먹고 싶었다. 돼지고기 목살을 샀다. 잠깐 쉬다가 저녁을 먹었다. 어제 산 라면도 같이 먹었다. 어제와 비슷한 음식 구성이지만 한식이라서 좋았다.

알베르게를 찍지 못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만 찍었다.

8시 30분쯤에 휴대폰을 껐다 다시 켰는데 심카드의 pin번호를 입력하라고 떴다. 몰라서 가방을 뒤져서 pin번호가 적힌 카드를 찾으려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아스토르가'에서 심카드를 바꿨는데 그때 같이 버린 듯했다. 혹시 사진을 찍어둔 게 있나 싶어 유심을 빼서 갤러리를 봤으나 사진도 없었다. 순간 멘붕이 왔다. 어떡하나 싶어 와이파이를 켜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대리점에 찾아가면 된다고 한다. 유심 통신사를 찾아보니 40분 거리에 있었다. 10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구글맵으로 네비를 하고 바로 나갔다.(구글맵 네비로 경로를 설정하면 인터넷이 끊겨도 길을 찾을 수 있다.)

통신사에서 알려준 핀번호. 다신 까먹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음산한 골목을 지나가며 거의 뛰어가듯이 갔다. 골목들을 나오니 큰 대로변이 나온다. 거기에 쇼핑센터가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서 지금 쓰고 있는 유심의 통신사를 찾기위해 뛰었다. 간신히 도착했는데 9시였다. 해결하는게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유하한테 알베르게 봉사자분들한테 10시에 문을 닫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5분도 안돼서 다 해결됐다. 약간은 허탈했다. 다시 털레털레 알베르게로 돌아갔는데 9시 58분쯤에 도착을 했다. 10시 전에 도착해서 스스로에게 뿌듯했다. 몸이 땀에 절어져서 다시 샤워하고 잤다.

가는 길에 꽃이 펴있었다.

-이날은 Rabanal Del Camino에서 Ponferrada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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