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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Feb 04. 2021

2월에 피는 벚꽃

때 이르게 타는 봄

2020/02/12

커피와 함께한 느긋한 아침. 느긋한은 개뿔. 빡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카페에 눌러앉아있었다. 유심이 또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났는데 4g가 작동이 되질 않는다. 데이터를 다 썼다는 문자가 한통 왔다. 나는 분명 15유로에 15GB를 샀는데 뭔가 이상했다. 문자에는 15유로만큼 충전이 되어있다고 적혀있다. 이건 직원이 내게 잘못 알려줬거나 내가 잘못 알아들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필 오늘 이러냐...

오늘은 늦게 출발했다.

충전을 하려면 전화를 걸어야 한다. 스페인어로 안내를 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알베르게에서 옆 침대에 있던 스페인 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고 내 카드의 정보를 입력을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하시더니 지금 아침 이른 시간이라 충전이 안된다고 한다. 12시쯤에나 해야 한고 말씀하신다. 이나라 통신사는 왜 이런 거냐?

조개 표시판

통신사 가게가 문 여는 시간을 찾아봤다 10시에 문을 연다. 그때까지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어야 했다. 통신사 근처에 카페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2시간 동안 거의 눕다시피 앉아서 버텼다.

폰페라다를 벗어면 보이는 시골길

10시가 되어 카페를 나왔다. 원래 쓰던 통신사가 아니라 다른 통신사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Hola?"

아리따운 스페인 여성이 내게 인사를 한다. 심카드를 사려고 왔다고 말했다. 심카드 종류를 안내해준다. 마음에 드는 상품을 주문했다. 심카드의 정보를 입력하는데 자꾸 얼굴에 눈이 간다. 괜히 친해지고 유심이 말썽을 부린다는 게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낳을 줄이야.

"혹시 남자 친구는 있나요?"

친해지고 싶어서 쓸데없는 말을 해보았다.

"아 네 있어요."

아쉽다. 20분 후면 이 여성분과도 다시는 안 볼 거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목가적인 풍경

아리따운 여성분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심카드를 받고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 38km를 가야 되는데 지금 시간이 10시 반이다. 걱정이 이제야 몰려온다.

혼자 조용하니 걸으니 좋았다.

조금 걷다가 배가 고파졌다. 벌써 12시가 되었다. 근처에 피자집에 들어가서 파스타를 먹었다. 새우가 들어있는 파스타를 시켰는데 크림으로 되어있었다. 크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피자도 또 시켰다. 맛은 그냥 그랬다. 나오는데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었다가 챙기는 것을 깜빡했다. 직원이 따라 나와 가져다줬다. 큰일 날 뻔했다. 정말 감사하다.

열매가 없던 포도나무 밭

카미노 길이 시작할 때와는 달라졌다. 가는 길마다 벚꽃들이 나를 맞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날씨도 따뜻하다. 2월의 벚꽃에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때 이르게 봄을 타는 것 같다. 한국은 지금 오들오들 떨고 있을 건데.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해야겠다.

2월에 피는 벚꽃

빨리 걷고 있지만 오늘 머물 마을의 예정 도착시간이 7시였다. 6시가 되니 어둑해지더니 서서히 춥기 시작했다. 골짜기를 따라 있는 도로를 끼고 걸었는데 약간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미리 알베르게에 도착한 유하가 카톡이 왔다. 오늘 머물 알베르게에서 저녁식사를 제공하니 먹을 거냐고 묻는 것이다. 당연히 신청을 했고 7시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밥을 먹으러 갔다.

암바스메스타스 전 마을. 이 마을에서 스페인민박을 촬영했다고 한다.
오늘 머무를 '암바스메스타스'

식탁에는 유하랑 우철 씨가 앉아있었다. 우철 씨는 엄청 여유롭게 가시더니 상당히 빨리 이곳까지 왔다. 걸음이 가벼운가 보다.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다. 애피타이저로 어묵탕 비슷한 게 나왔는데 맛도 비슷해서 좋았다. 메인디쉬로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나쁘지 않았다. 독일인 노부부인 호스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노부부의 따뜻함 때문인지 하루 더 있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곳이었다.

부엔까미노!

-이날은 Ponferrada에서 Ambasmestas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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