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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Feb 05. 2021

좋은 아침

"음...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요."

2020/02/13

'좋은 아침'

주인장이신 독일인 노부부께서 우리를 위해 주방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직접 한글로 적어주셨다. 따뜻한 말 때문에 빵과 우유밖에 없는 소박한 식사가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독일인 노부부 주인분이 직접 써주신 '좋은 아침'

아침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오려고 신발을 신고 있었다. 우철 씨는 주방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자신은 여기에 하루 더 있다 갈 생각이라고 한다. 작별인사를 했다. 이분과도 순례길에서 계속 겹치니 정이 생겨버렸다. 오늘 같이 못 가는 게 아쉬워진다.

오르막길 오르기 전 마을

밖을 나서니 비가 조금 내리다가 그쳤다. 걷는 내내 비가 오고 그치는 것의 반복의 연속이다. 하지만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비가 거세졌다. 옷이 젖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우비를 꺼내 입었다.

우비를 입고 찍어보았다.

'빡센 길'

두 시간 정도 평지를 걸으니 그 후엔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순례길 1일 차 이후로는 심한 오르막이 보이질 않았는데 오늘이 두 번째로 힘든 것 같다. 비를 맞으면서 걸으니 더 힘들어진다. 길 왼쪽을 봤다.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내리막길이 쫙 깔려있는 게 확실했다. 멋있지만 살짝 무서웠다.

위에서 본 내리막길

오르막길 끝에 마을이 보였다. 마을에 있는 식당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건물 처마로 들어갔다.  건물에 기대어 가방을 내렸다. 어제 먹고 남은 피자를 가방에서 꺼냈다. 처마에는 정오의 비가 뚝뚝 떨어진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피자를 한입씩 베어 물었다.

'짜다.'

지나가는 길에 보였던 자판기에서 뽑은 코카콜라캔의 뚜껑을 땄다.

'치지직'

소리가 나는 동시에 입으로 갖다 댔다. 맛있다. 지금의 풍경, 지금의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나름 운치 있다고 생각에 잠겨있을 때, 비에 털이 젖은 두 마리의 개가 내 옆을 서성인다. 밥 먹는 모습이 부러웠나 보다. 남긴 피자를 던져줬다. 신나게 달려가서 뜯어먹는다. 줄 건 이거밖에 없다. 5분 정도를 쉬고 다시 가방을 메고 걸었다.

오르막길을 지나 내려가는 길. 탁트인 풍경이 좋았다.

산의 정상에 위치한 마을에 왔다. 슬슬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뒤에서 따라오던 유하가 카톡이 왔다. 방금 지난 그 마을에서 자신은 멈춰야겠다고 한다. 알베르게 위치를 물었다. 1분 전에 지난 곳이어서 뒤로 돌아 잠시 작별인사를 하러 갔다. 비가 와서 나도 거기서 멈추고 싶었지만, 해발 1300m 정도인 이곳에서는 내일도 비가 올 듯했다. 그래서 더 내려갔다.

날이 맑아졌다.

5시 반쯤이 되어서 머물려는 마을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레온에서 나보다 하루 앞서가던 우섭이 형님을 여기서 다시 만났다. 며칠 만에 만나니 또 반가웠다.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 씻으러 갔다. 씻고 나왔는데 비를 맞고 걸어서인지 열이 살짝 났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내리막길에 보였던 마을

빨래를 돌리고 잠깐 쉈다. 8시가 되어 우섭이 형님과 밥을 먹으러 갔다. 가려는 식당에 문이 닫혔다. 겨울이어서 장사를 안 하나보다. 다른 식당에 들렀다. 가장 무난한 스테이크 세트를 주문했다.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샐러드가 나왔다. 특히 샐러드에 숙주가 얹어져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것과 함께 레몬맛 맥주를 시켰다. 맥주에 스테이크를 먹으니 오늘 하루의 피곤이 풀렸다. 내일부터는 오랜만에 우섭이 형과 같이 걷는다.

우섭이 형과 먹은 저녁

방으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한국인이 두 명이 보인다. 가톨릭 신자인 한 분이 순례길에 대해 찬양을 한다.

"나는 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나의 인생, 힘들었던 순간 모든 걸요.  전 순례를 하면서 하느님과 만났어요. 제 인생에서 커다란 터닝포인트예요!"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혹시 그쪽은 순례를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저랑 비슷하죠?"

오늘 머물렀던 알베르게 와이파이. 알베르게를 찍은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음...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요."


-이날은 Ambasmestas에서 Tríacastela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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