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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Feb 07. 2021

발렌타인데이에 도착한 '사리아'

프랑스길의 거점도시

2020/02/14
적절히 쌉싸름한 커피 위에 올려진 고소하면서 섬세하게 만들어진 우유 휘핑, 새콤하면 달달한 오렌지주스 거기에 나의 배를 채워줄 샌드위치와 반숙된 계란. 오늘의 시작은 그러했다. 든든해진 배를 이끌고 밖으로 나온 이른 아침 공기는 살짝 서리가 낄 정도의 온도로 차가웠다.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건 오늘의 아침에 쓰는 것일 거다.

아침에 먹은 커피. 휘핑이 예술이다.

오늘은 우섭이 형님과 같이 걸었다. 이렇게 둘이서 가는 건 거의 처음이다. 동행은 했지만 속도에 차이가 있어서 항상 떨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형님과 걸으면서 얘기를 많이 했다.

항상 듬직했던 우섭이 형

마을을 조금만 지나자 갈림길이 보였다. 왼쪽과 오른쪽이 있었다. 오른쪽이 걷는 거리가 짧아서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오른쪽 길은 동네 뒷산 같은 산을 넘어야 했다.

갈림길

'어!!!'
오르막길에서 한걸음 뒤에 계시던 형님이 소리를 지른다. 뒤를 돌아봤는데 나무에 오소리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 나무에서 머리를 파묻히고 있다. 살짝살짝 얼굴을 비추는데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런데 나쁜 자식이 초점을 맞출 때마다 움직여서 제대로 찍지 못했다. 10분 정도 사진 찍기를 시도했으나, 오소리는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한 번이라도 가만히 있어주지.

가만히 있어주지...

평탄한 길이 쭉 펼쳐졌다. 말들이 방목하는 곳이 보였다. 백마가 한 마리 있었는데 정말 예쁘게 생겼다. 말들이 테두리 안에 갇혔는데 점프만 하면 금방 도망칠 수 있는데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먼저 가까이 다가가서 어루만져줬다. 그런데 살짝 테두리에 몸이 닿았는데 전기가 찌릿 올라왔다. 전기 때문에 말들이 안 나오는 거였다.

백마 진짜 예뻤다.

오늘은 '사리아'라는 도시로 간다. '사리아'는 프랑스길의 거점도시라고 한다. 이곳에서부터 순례자 여권에 도장이 매일 찍혀야지 순례를 인증해준다고 한다. 3시간 정도면 그곳에 충분했기에 천천히 걸었다. 사리아에 들어설 때 벚꽃이 많이 피어있다. 며칠 전부터 보이는 벚꽃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만개한 벚꽃이 사리아에서 나를 맞이해줬다.
벚꽃

1시가 되어서 '사리아' 중심부에 왔다. 여기 지방에서 유명한 문어요리 맛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어제 알베르게에서 같이 계셨던 한국인 여성분이 처량하게 드시고 계셨다. 옆쪽에 가서 얘기를 나눴다. 어제 조금 친해져서 장난을 쳤다. 오늘 새벽 6시쯤에 나오셨다는데 이곳에 상당히 늦게 오신 것 같다고 말이다.

스페인 문어요리

그분은 오늘 '포르토마린'이란 곳을 간다고 했다. 오늘 나의 원래 목표는 거기였다. 이야기하면서 그분께도 나의 목적지를 얘기했다. 그런데 밥을 먹으니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나를 애타게 원하는 그분을 눈빛을 안타깝지만 거절했다. 다음에 다른 곳에서 뵙기로 했다. 우섭이 형님과 사리아에서 열린 알베르게를 찾아다녔다. 그녀는 먼저 후다닥 음식점을 나갔다.

10분 정도 지나 꽤나 괜찮은 곳을 찾았다. 사람들도 없어서 맘에 들었다. 유하에 연락하니 한 시간 안으로 이 도시에 온다고 한다. 주소를 알려줬다. 곧 유하가 왔고 밥을 먹으러 금방 나갔다. 나도 장을 보러 따라 나갔다가 마트가 닫혀있어서 혼자 돌아왔다. 돌아오니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또 다른 한국인 여성분이 짐을 풀고 계셨다.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인 것이 문득 떠올랐다. 다시 밖으로 나가 초콜릿을 파는 곳을 찾아갔다. 마트가 문을 닫았으니 제과점을 찾아갔다. 초콜릿이 따로 없어서 초콜릿으로 만든 빵을 샀다. 유하랑 우섭이 형, 그리고 아까 짐을 풀은 그분께 나눠줬다. 카미노 도중에 여자한테 초콜렛 받기는 글렀으니 내가 주면서 다른 분들에게 선물해줘야지. 그분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풍족해졌다.

와인과 먹은 베리

저녁이 되자 마트가 다시 문을 열었다. 우섭이 형님과 유하랑 같이 장을 보러 갔다. 2013년 산 와인이 두병에 10유로밖에 안 해서 샀다. 돼지고기를 먹고 싶어서 삼겹살을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와 구워 먹었다. 생고기일 줄 알았는데 소금에 절인 것이었다. 상당히 짰다. 와인은 7년 산이라서 맛이 좋았다. 벌컥벌컥 마시다가 혼자 훅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얘기하다가 몸을 못 가눌 것 같아서 침대에서 뻗어버렸다.

말들 귀엽다.

-이 날은 Tríacastela에서 Sarria까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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