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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Feb 17. 2021

진정한 까미노의 끝은 아련하다.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피스테라'

2020/02/21
어제 저녁 먹을 때였다. 유하랑 '피스테라'를 갈 건지 말 건지를 얘기를 했다. 결론은 포기를 하고 '포르투'로 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그리고 자려고 누웠는데 아쉬움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잠이 오질 않았다. 유하 방에 노크를 했다. 안 자고 있었다. 거실로 불렀다.

숙소에서 보인 풍경

"아무리 생각해도 피스테라 안 가는 거 너무 마음에 걸렸는데 예약 바꾸는 거 어때?"

유하도 그 말을 듣더니 가지 않는 걸 많이 아쉬워한다. 이미 버스표를 예매해버려서 변경할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이 노력했는데 할 수가 없었다. 표를 버리자니 표값이 비싸서 버릴 수도 없었다. 바꾸지 못하는 거 어쩌겠는가? 그냥 포기하고 체념하고 그대로 자버렸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풍경

8시가 되어 일어났다. 우섭이 형님의 방에 문이 열려있었다. 어제 말한 대로 이미 피스테라로 떠나셨다. 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잠결에 들렸는데 일어나지 못한 게 후회가 남았다.

터미널로 가는길

아침밥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버스가 12시인데 터미널이 바로 앞이었다. 늦게 나가도 될 듯했다. 유하가 10시쯤에 짐을 다 정리하고 어제 남은 제육볶음이랑 밥을 먹는다. 11시 15분까지 쉬다가 터미널로 갔다.

이런 모습의 추억은 가슴에 오래 머무른다.

온라인 표를 종이로 바꾸기 위해서 매표소 앞으로 갔다.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예매한 표를 받을려다가 혹시나 내일로 변경이 가능한지 여쭤봤다. 너무나 쉽게 오케이 해버렸다.
'설마 했는데 되는구나!'
바로 다음날로 변경하고 '피스테라'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땡잡았다.

피스테라 버스 시간표

부가설명을 하자면 '피스테라'는 라틴어로 땅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당까지가 순례길의 종착지이지만 거기서 아쉬움이 남는 사람들은 피스테라까지 버스투어를 하거나 또 걷는다.

피스테라. 이것을 보기위해 가봤다.

1시에 출발하는 '피스테라'행 버스를 탔다. 피곤해서 앉자마자 자버렸다. 4시가 되어서 도착했는데 한 번도 안 깨고 잤다. 밖으로 나왔는데 몽롱하면서 머리가 약간 띵했다. 어제 새로 산 옷을 입었을 때 살짝 추웠는데 감기가 걸린 것 같았다. 코로나 걸린 건 아닌가 살짝 무서웠다. 그래도 스페인은 코로나 환자가 없으니 아니겠지.

피스테라에서 본 십자가

밥을 먹고 생각해보니 '묵시아'(묵시아는 또 다른 마지막 도시이다.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피스테라를 간 사람은 묵시아도 엮어서 가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까지 가기엔 무리였다. '피스테라'에 머물기로 했다. 근처 알베르게를 찾아서 체크인을 했다.

피스테라 끝에 도착할 때 본 동상

짐을 맡겼다. 피스테라에는 0km 표시가 되어있는 비석이 있다고 한다. 일몰시간에 맞춰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바다가 있기에 예쁠 것임에 틀림없었다.

0km 비석

일몰 1시간 전. 알베르게를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30분간을 걸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0km 비석이 보인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걸어서 이곳까지 온 외국인 3명이 비석을 보더니 소리를 지르고 감격한다.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들은 앞에 바다로 걸어갔다. 따라갔다.

사진도 찍어 보았다.

절벽이 있었는데 장화 동상에 눈이 간다. 예전엔 카미노를 마친 순례자들이 길의 끝에서 지나온 길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장화 동상이 있는 절벽에다가 자신의 짐들을 태웠다고 한다. 하지만 위험하고 환경오염에도 문제가 있어서 장화 동상을 만들고 불태우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장화 동상

오른쪽을 보니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해가 바다에 숨을 때까지 지켜봤다. 거센 바닷바람이 나를 감싸면서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에서 올라온다.

'끝'
바다에서 일몰을 보니 정말로 끝났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도착했을 때 느끼지 못한 감격일 것이다. 순례길의 추억들이 '아련함'이란 감정으로 온몸을 스치듯 지나간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저무는 해를 그저 바라봤다. 옆에 유하도 해를 말없이 바라본다. 생각해보니 순례길을 걸으면서 그녀와 가장 오래 붙어 있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게 많다.

일몰 때 찍어 봄.

떨어지는 해는 바다에 살짝 걸치더니 금방 숨어버렸다. 어스름도 잠시, 어둠이 뚝하니 찾아온다.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피스테라'를 온 건 정말 잘한 결정이다.

일몰

왔던 길을 걸어 숙소로 갔다.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었는데 유하가 혼자 하라고 하며 자신은 걸어가겠다고 한다. 조금만 있음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아 그냥 같이 걸어갔다. 몇 분 지나니 너무 어두워 앞에 있는 유하도 제대로 안 보인다.

피스테라의 풍경

마을로 돌아와 마트에서 음식을 좀 샀다. 어제 따지 않은 와인을 가져왔는데 그것과 같이 먹었다. 와인 몇 잔을 먹으니 금방 취해서 후딱 자버렸다. 기분이 좋은 오늘이었다.

까미노의 끝을 상징하는 장화

-이 날은 'Santiago de Compostela에서 'Fisterra'까지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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