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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Feb 21. 2021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유라시아 최서단 '호카곶'

2020/02/26
호카곶에 가는 날이다. 10시가 되어서 기차역으로 갔다. 숙소에서 가까워서 금방이었다. 역까지는 내리막길이라서 편했다.


역에 들어섰다. 어제 산 '데이패스'를 찍고 개찰구 안으로 들어갔다. 신트라행 기차는 찾기가 쉬웠다. 기차 좌석에 편하게 앉았는데 그것이 다행일 줄은 그땐 몰랐다. 약 1시간 반 정도 가는데 서는 역마다 사람들이 몰려 타서 기차 안은 미어터졌다. 난 앉아 있었기에 편하게 자면서 갔다.

신트라 궁전에서 찍은 포르투갈 국기

깊게 잠에 빠지려는 찰나 기차는 신트라 역에 도착해 있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기차에서 빠져나왔다. 오는 건 편하게 왔지만 역을 빠져나가는 건 너무나 힘들었다. 기차에 사람들로 채워졌으니 나가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가는 개찰구가 두 개밖에 없었기에 빠져나갈 수가 없다. 거기에 카드까지 찍어야 하니 말 다했다.

호카곶

약 30분 정도 역 안에 있었던 것 같았다. 드디어 빠져나와 '호카곶'을 가고 싶었다. '호카곶'은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 끝이다. 그렇기에 여행을 시작할 때 마지막으로 정한 곳이었다. 말로만 듣던 그곳을 먼저 가야지.

호카곶 기념비에 있는 십자가

역에서 조금만 걸으면 호카곶으로 가는 버스가 멈추는 정류장이 있다. 얼마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비는 올데이패스권과 1회권이 있었다. 나는 이곳을 보고 신트라로 갈 것이기에 1회권만 끊었다. 일몰도 보고 싶었지만 '피스테라'에서 일몰을 봤으니 호카곶의 기념탑만 본 걸로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호카곶 근처에서 찍은 사진. 버스타면서 본 풍경도 이러했다.

한 시간 정도의 꼬부랑길을 따라 버스가 달린다.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지만 멀미가 심해져서 포기했다. 밖을 바라봤다. 푸른 바다와 초록의 땅이 지상낙원을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의 제주도와도 비슷한 느낌도 있었다.

호카곶 기념비
바람이 거세다

마지막 버스정류장에서 기사님이 내리라고 말하신다. 뒷문으로 내리면서 바다 쪽을 바라봤다.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하늘과 땅을 나타내는 파란색과 초록색의 경계에 바람과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바다 쪽으로 걸으니 기념탑이 보인다. 사람들 대부분은 거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혼자 온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다.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찍은 사진

한 시간 정도 둘러보다가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햄버거와 에그타르트를 시켰다. '관광지에는 덤탱이가 기본'이라는 말답게 여기서도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 배를 채웠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일몰까지 보고 싶었지만 여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신트라'로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호카곶

아까 내렸던 정류장에 가서 '신트라'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사람들이 많아 서서 갔다. 입구에 도착하여 표를 끊고 입장을 했다. '신트라'는 포르투갈 왕들의 여름궁전이었던 곳으로 호카곶의 절경 속에 지어진 색채가 뛰어난 궁전이다. 그렇지만 러시아에서부터 여기까지 수많은 서양식 건축물들을 봐왔던 나는 감흥이 크진 않았다. 그냥 한번 스치듯이 구경하고 나왔다.

신트라 궁전

다시 역 앞으로 돌아와서 밥을 먹었다. 계속 생각을 해봤다. 호카곶에서 일몰을 보지 않고 가는 건 멍청한 짓인 것 같다. 다시 호카곶으로 가야겠다. 일몰시간에 맞춰 호카곶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성당 내부일 것이다.

일몰시간은 6시 40분. 버스는 10분 전에 도착했다. 일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해는 떠있었다. 괜찮은 사진을 찍고 떨어지는 해를 바라봤다. 사색에 깊게 빠질 찰나 해는 순식간에 수평선 밑으로 숨어버렸다.

곧 일몰이다.
대륙 끝에서의 일몰

기념탑 앞으로 갔다. 거센 바닷바람이 나의 머리를 잡고 쎄게 흔든다. 일몰 후의 어스름은 수평선 위로 새어 나와 하늘을 주황빛으로 짙게 고 있었다. 그 빛이 다 저물지 않아 기념탑에 적힌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
기념비에 새겨진 말이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해가 졌다.
일몰

유라시아의 거의 동쪽 끝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 끝인 이곳까지 오는데 75일이 걸렸다. 그리고 약 700만 원의 지출이 있었다. 기념탑을 만지니 일련의 여행 과정들이 생각이 났다. 여행자금을 위해 악착같이 1년간 노가다를 뛴 것부터 해서 여행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그들에게서 받은 고마움들. 나는 이 여행을 통해서 성숙해졌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가가 울컥해진다. 신기한 일이다. 일몰은 사람을 진지하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 깃털처럼 가벼운 나까지도 이렇게 사색하게 만드니 말이다.

생각이 많아졌던 시간이었다.

유라시아 끝에서 끝으로 오는 여행은 오늘 끝났다. 비록 한국에 가려면 보름 정도가 남았지만 내일부터는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해는 둥근 게 맞다.

-이 날은 'Cabo da Roca' 갔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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