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회고

by 하모니블렌더

회고를 매듭 짓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분명 12월 끝자락부터 회고 노트도 끄적거렸고, 연간 하이라이트도 뽑았는데 왜 이렇게 이번 회고는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느낌이 드는 걸까. 2025를 보내기 어려운 이유를 적어봤다.


첫 번째 이유. 30대에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 첫 갭이어, 첫 이직, 첫 대기업 면접, 첫 독립출판..

돌아보니 변화와 도전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시간을 다시 펼쳐보고, 그 때의 난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품었었는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질문하고 소화하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 프레임워크 과다 복용의 해였다. 2025년 3월쯤 새해 계획을 짰을 당시 계획 템플릿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만다라트, 비전보드, 목표를 위한 체크리스트 등) 비전보드도 거의 10년 만에 리뉴얼을 한 것이니.. 무래도 갭이어를 보내고 있었던 때라 계획에 너무 힘을 주고만 것이다.


물론, 다양한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좋았던 점도 분명 있었다. 이런저런 프레임워크를 쓰다보면 반복적으로 쓰는 '동일한 키워드'가 보이는데, 이는 나의 진짜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프레임워크가 여러 개인 만큼, 잘게 잘게 쪼개진 체크리스트만 살펴봐도 금세 버거웠다. 매일 보지 않을 체크리스트, 매일 심상화하지 않는 비전보드라니.. 2026에는 실용적인 계획 몇 가지로 충분하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이유. 11월-12월에 회사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1월에서 10월까지의 내 소중했던 시간들이 흐릿해지는 느낌이었다. 난 그렇게까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은 아닌데, 말도 안되는 사건을 너무 빨리 빨리 소화하려고 해서 그런지,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몸도 마음도 정말 붕 떠버렸다.



회고하다 지친 이유를 써보니 그럴만 했다.

2025년, 나는 잘 살았고, 현재 잘 살아가고 있는가?

잘 사는 척도를 2025에 세웠던 계획에만 두고 싶지는 않고

솔직하게 지금 기준으로 드는 생각을 남겨두고 싶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나의 2025년은 심플하게 상하반기로 딱 구분된다.

-상반기 : 7년 다닌 첫 직장을 퇴사하고 '갭이어'를 보냄

-하반기 : 입사 후, 새벽 2-3시까지 일하며 '브랜드 기획자'로서 커리어 쌓음


상반기

- 이사 후 가구 구매 및 집 정리

- 7년 간의 일 회고 / 2025 새해 계획(만다라트, 비전보드 등)

- 갭이어 유튜브 채널 개설 후, 꾸준히 운영

- 브랜드 기획자 친구들과 글쓰기 모임(업계동무)

- 트레바리 모임 시작


2025년 3월부터 계획을 세웠으니까 실은 그로부터 6개월 정도 갭이어를 더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통장 잔고가 실시간 떨어지는 것이 불안했고, 빠르게 취업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더 조급해질 것 같아 포폴 준비를 하는 김에 얼른 취업을 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섰다. 어중간한 갭먼스였다. 엄마와 다녀온 유럽여행 영상 편집도 목표한 것의 20~30%밖에 하지 못해서 여전히 외장하드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7년 다닌 직장에서의 시간을 회고하고 그동안 내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왔는지 정리할 수 있었고 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하나둘 만나며 말 그대로 여유있는 갭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그렇게 유튜브 유튜브 외치기만 했는데, 실제로 기획형 영상을 하나둘 만들며 구독자/조회수를 실험하기도 했다. 여러가지로 그동안 원했던 것을 하나둘 시도는 가볍게 해봤던 시간이었다.


하반기

- 브랜딩 외주 1건

- 올리브영 과제 전형 합격 (최종 인터뷰 전 인성 탈)

- 인하우스 브랜드 기획자로 이직

- 브랜딩 1건, 세미 브랜딩(카테고리) 2건, 팀 빌딩

- 트레바리 모임에서 퍼블리셔스 테이블 독립출판 출간


우연히 제안 받은 회사에 들어가, 브랜드 기획자로서 조금 더 스페셜리스트처럼 일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 존재했지만 여전히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좋은 리더, 동료 이전 직장과 전혀 다른 조직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조직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떤 브랜드를 추구하는지 일하는 환경/회사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 등에 대해 더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


하반기는 상반기에 일하지 않은 것 만큼 더 달려야 한다고 작정이나 한 것 처럼.. 일복이 넘쳤다. 회사 내부적으로 브랜딩 1건(브랜드 런칭 준비), 세미 브랜딩(카테고리) 2건, 팀 리빌딩 등이 있었다. 그 외적으로도 트레바리 책 출간, 올리브영 최종합격 전까지 간 것(인성 탈), 업계동무 글쓰기, 지인의 브랜딩 서포트 등 다양한 활동을 했었다. 커리어적으로 봤을 땐 말처럼 단기간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며 달렸던 해였다.


전반적으로 이 상하반기를 돌아보면, 수고했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애썼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걸 다 뚫고 성장했네!"


2025년을 정리해보면,

커리어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고, 확실히 한 층 더 성장했다.

브랜드 기획자로서 더 뾰족하게 일했고, 영업력 좋은 회사에서 매출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다각도로 배울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하고 싶은 회사에 들어온 것도 맞았다. (물론, 여러 일을 겪으며 뼈아픈 시간도 보냈지만 그 역시 내가 신뢰하는 리더와 동료들 때문에, 또 내가 이 곳에서 경험하고 싶은 일들 덕분에 잘 버티고 있다.)


상하반기 일의 유무에 따라 나의 하루하루가 너무 달랐어서 2025년은 분명 '다채로움'을 경험한 1년이었다.

가능하다면, 매년 몇 개월은 나를 위한 시간을 쓰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조화로웠는가 살펴보면?

극단적으로 일이 몰렸을 때와 없을 때로 나뉘기 때문에 완급 조절을 하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때때로 몸이 무너졌다. 가장 평온하다 느낀 것은 남자친구와의 행복하고 무탈한 관계 정도(?)..하하




2026년을 앞두고 생각해볼 것

최근 M님과 회고 프로세스를 진행하다가 <'의미'와 '성장'의 흐름에 있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해지는 나>를 알게 되었다. 올해 의미 있었던 일 3가지를 뽑고, 그 공통점을 갖고 분석했을 뿐인데 나의 무의식적인 패턴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삶의 패턴은 늘 그 일이 의미가 있었는지, 성장의 흐름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성장의 흐름에 내가 배울 수 있는 어른이 있었는지였다.


그러고보니 나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존경스러운 어른 밑에서 무언가를 배우길 원했다. '왜 그런 걸까' 스스로 디깅해봐야 하겠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M**선생님께 영어 그룹 과외를 배울 때도, 20대 중반에 M코치님께 영어를 배우러 갔을 때도, 30대에 기획을 배우기 위해 Y**님 커뮤니티에 들어갔을 때도.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소속되었던 여러 대외활동을 했을 때도 그랬다. 문제는 내가 그런 구조에 나를 반복적으로 던져야만 안도감을 느끼고, 성장의 흐름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연말에 큰 일을 겪고도, 여전히 이 조직에 남아 내가 해야할 일들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은 그 속에 '내가 배울 것이 여전히 있다.' '나에게 이 회사는 의미가 있다.'라는 결론으로 귀결 되었기 때문인데.. 또 그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리더와 동료가 있다는 것이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내 영혼이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충분히 힘들 수 있는 시기를 내가 너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나의 학습된 생존 방식에 의해 내 마음을 너무 쉽게 묵살해버린 것은 아닌지 조금의 우려가 생겼다.


결론은 2026년 계획을 세우기 전, 무방비 상태로 또 비슷한 계획을 세우지 않을 거다. 대신,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무한의 상상을 동원하여 정말 살고 싶은 그림을.. 타인의 욕구가 아닌 나의 욕구와 꿈꾸는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청사진을 짤 계획이다.



2025년과 진짜 굳바이

2025년을 떠올렸을 때 봉고차 한 대를 빵빵거리며, 참 여기저기 열심히 영업하고 다녔던 해처럼 느껴졌다.

작은 봉고차지만, 내가 스스로 핸들을 잡으며 이곳저곳 경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후회도 없는 걸 보면, 잘 달려온 것 같다. 그런 면에서 2025년은 성과와 속도 측면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아온 한 해였고, 기억하고 싶은 한 해다.


다만, 2026년을 앞두고 2025년에 나의 '습'으로 선택해온 길은 없는지. 내 영혼이 살아있다고 느낀 일이었는지. 그런 선택이었는지. 내가 알지 못한 세계는 무엇인지. 조금 더 내 속도에 맞게 천천히 고민하며 나아가고 싶다.


2026년 계획을 세운다면 나는 여전히 영어를 잘 하고 싶을 거고, 세상에 필요한 브랜드를 기획하고 싶을 거고, 계속해서 기록하고 싶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쓸 것이다. 다만, 하나 달라지고 싶은 점이 있다면 내가 앞으로 정말 어떤 삶을 생생하게 살고 싶길래 그런 To-do를 적은 건지. 몇 개 없는 심플한 목표더라도, 정말 하나하나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써나가고 싶다. 천천히 확실하게 적어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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