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by 하모니블렌더

딱히 갈 곳도 없지만 자연의 공기를 느끼고 싶어 나갔다. 할머니네 산골짜기 근처 한 팬션 앞에 그네가 있다.

한 두번쯤 타봤던 주인없는 그네를 다시 찾아갔다. 막내동생인 열일곱 소녀와 육학년된 어린 고모의 딸과 함께.

우린 서로를 찍어가며, 양보하며 그네를 번갈아탔다.

"언니 갑자기 왜 멍때려? 훠이훠이-" 육학년 예린이는 물었다.

나는 사실 그네를 유유히 타며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인생은 그네에 비유할 수 있겠다. 어릴 때는 조그만 몸똥아리로 저만치 높은 곳에 닿고싶어 서서 타보기도, 앉아서 세게 밀어달라고 하기도,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고 더 스릴있게, 또 더 높이 날아 더 먼 곳까지 보려 애를 쓰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쩌면 점점 발을 디딜만큼 조금은 안일한 자세로, 과한 욕심은 부리지 않으면서 옆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늙어가는 것. 그네를 타다가 자연스레 내려 옆 사람과 걸어가는 것.'

그게 어쩌면 인간의 늙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조금 우울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음엔 이게 내 생각이 아니었으면- 아니야-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10대때는 저 멀리- 20대 때도 저어만큼 멀리- 30대부터는 조금 안정적이게- 40대,50대는 점점 가면 갈수록 그네의 속도를 현저히 줄이며 멈추어가는 것. 그게 생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모든 꿈과 열정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져 이 생각자체를 하고 있는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진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이 하는 꼰대,가 되는 것일까. 순응해버리는 것일까.하고.. 그런데 뭐랄까. 다시 생각해보니 첫 번째처럼 조금 긍정적이게 풀어버리는 해석도 나왔다. 억지로 짜낸듯한 느낌도 있지만, 어쨌든 스물 여덟의 1월에 얼어붙은 빙판길과 눈이 보이는 그 경치에서 그네를 타며 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했다. 자연스럽게..




그네를 처음 배운 16살의 겨울을 떠올린다.

그 때 나에게 그네는 미지의 세계이고, 넘고싶은 뜀틀같은 거였다. 그것도 타국인 먼 땅 뉴질랜드의 한 공원에서 약 일주일간 매일같이 그네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그네타는 법을 익혔다. 오...? 어쩌면 내 성공경험 첫 번째는 영어공부했던 2년 전이 아닌, 스무살 때 대학을 갔을 때가 아닌, 16살 그네를 처음 스스로 익혔을 때였다.

와... 놀라운 깨달음이다. :)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같은 나이지만 그네 하나를 타면서도 생각하는 모습이 다르다. 또 하나 놀랍고 어이없는 건 17살의 막내가 그네를 처음 익혔던 내 16살과 딱 1살 차이라는 것.

세월이 금방이다.



이번 설을 지나면서 내가 그네타는 것을 인생으로 비유한 건 급작스런 생각이라기보다,

어린 고모와 삼촌이 36,35. 그 고모의 딸이 13. 그리고 난 28.

세월의 숫자화에서 오는 조금의 우울감일지도 모른다. 우울감 더하기 사색이라고 해두자.



+@


참, 큰 사고가 날 뻔 했으나 작은 사고로 가족 모두가 헬을 살짝 경험했던 날이었다.

엄마의 실수로 차와 차가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났고, 어이가 없어 벙찌기도 하고 순간 화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던.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앞으로 시골을 오가는 길에 절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고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익살스럽게 라디오사연을 보내 바로 읽힘을 당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안했지만

엄마만큼은 아마 오늘 밤 편히 잠들지 못할 수도 있을거다. (ㅠㅠ엄마.... 잘자요~~ 좋은 꿈!! 사랑해용!)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도깨비의 대사처럼 좀 강제적으로라도 그 마인드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그럼 모든 것에 조금 더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D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차 빼고 다친 곳 없어 감사합니다.

스물 여덟의 겨울, 여전히 제가 저인 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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