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잡을 수 있을까?
아홉살 어린 열아홉살 남동생에게 스물 여덟의 누나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 꼭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살아도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
"그래도 난 두 마리 토끼를 꼭 잡고싶어."
다섯 살 꼬맹이에게도,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생명력'같은 소중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 친동생 역시 커가고 있다는 걸,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열 아홉살에게 어떤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쩌면 내 동생은 나보다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가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현실을 아주 잘 아는 30대가 20대초반에게 말하듯, 그렇게 19세는 28세에게 넌지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일주일도 더 된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싶었던 거 보면 그 말이 나에겐 조금의 위로였나보다.
어쩌면 그러지 않아도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런 위로 말이다.
모두에겐 '다름'이란게 적용되니까. 물론 핑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핑계를 뒷바침해줄 변명은 언제나 존재하므로, 그러므로 괜찮다. 자기합리화인걸 알지만, 그럼에도 날 그렇게 내모는 상황이 있음에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글쎄. 오히려 저 위로 덕에 자극을 받았다.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는 선택의 폭 역시 잊지 않은채로 나를 조금 더 포용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는 꿈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무조건'이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그게 아니면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마음이 강했다면 이제는 '그럴 수 있어.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이라는 마인드. 어느 것이 좀 더 현실적일까,라고 물었을 때 당연히 후자쪽일테지만 모두의 상황 속에 그 모든 명제를 집어넣기엔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고 상황이라 그 누가 함부로 A는 B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점. 그런 면에 있어서 나는 열아홉의 저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진다. 물론 여전히 나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다 동생 앞에 턱-하니 내려놓고 '어때? 할 수 있지?'라고 단번에 보여주고 싶은 첫째누나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그의 다른 의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감동했을 뿐이고,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물론 좋은 일을 하면 더 좋겠지만, 그게 더 좋을지 아닐지는 그가 그의 인생을 살고볼 일이다.
Q. 근데 정말 궁금하다. 좋아하는 일만 잡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만 잡은 사람, 둘 다 잡은 사람, 혹은 둘 다 잡지 못한(또는 어떠한 이유로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싶다. 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쪽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인지도. 혹 하나만 바란다면? 둘 다 이루기 위해 어떤 치열함을 견디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