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11살 차가 나는 꽤 어린 동생들에게 나무랄 때가 있다. 꽤 자주 그랬다.
그런데 좀 크고나서는 잔소리도 덜 하게 되는 것 같다. 그건 그들에게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어느정도 인정해줌에 의한 자연스러운 변화다. 물~론 아직 동생들에게 나는 여전히 잔소리를 꽤 하는 언니, 누나일지도 모르지만 내 입장에선 현저히 줄었다는 이야기다.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영상에 넣을 차분한 음악들을 찾다가 갑자기 요즘 나의 사회생활을 돌아보며 '믿음'과 '신뢰'에 대한 이야기를 끄적여보고 싶어졌다.
나는 요즘 정말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노동이라 생각했던 여러 것들로 또 머리론 아주 당연하지만 몸으로 쉽게 되지 않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포인트는 나도 내가 왜 지금 이 시점에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사실 관두기 충분하다. 다른 어떠한 조건을 막론하고.
글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요즘의 나는 마음고생 좀 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나름 10년차 알바생인데 처음으로.. 매일매일 끊이지 않는 욕을 꾸역꾸역 먹으며 일하고 있다. 토할 것 같다. 그치만 나름 정신을 붙들고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남은 시간들을 채워가며, 그렇게 위로하며.
문제의 시작도 끝도 '믿음'이란 생각이 든다. 상사는 나를 믿지 못한다. 나의 어설픈 실수들 때문에 나는 그런 아이로 굳어졌다. 그리고 한 줄기 빛같은 '이 정도면 괜찮아'같은 선심쓰는 말투의 칭찬에 일희하는 모습에 내 자신이 참 속 없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나는 상사를 믿는가? 아니. 글쎄. 그들에게 나의 인상이 그러하듯, 나의 모습에 그들의 인상 역시.. 아니 어쩌면 나의 첫인상보다 그들의 첫인상을 내가 먼저 좋지 않게 받아들였을거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의 뒷담을 들으며 시작했던 첫 출근날이 나에겐 가히 충격적이었나보다. 그들에겐 그저 동료들의 가벼운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계속되는 이야기에 나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친해지고싶지 않았다.
그 벽 때문일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겠다. 허나 벽을 넘어 오가는 웃음 속에 허한 웃음만 남은 이유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1도 없기 때문인거다. 믿지 않으면 자유를 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했다. 그게 내가 정의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사랑이다. 물론 난 하나님이 아니다. 제자일지라도, 제자의 ㅈ까지도 못간 딸래미이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자유를 주고 그에 맞는 효율적인 일처리가 가능할까? 가능하다. 그치만 이 공동체에서 내가, 그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오픈하는지에 따라 달려있다. 쉽지 않지만 연습중이다. 인간관계가 제일 어려워-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하는 요즘. 모든 걸 뒤로하고, 그냥 나에게 나 스스로 자유의지를 주고 싶어진다. 그래.. 글을 쓰다보니 하고싶은 말에 이르렀다.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싶었는지, 이 단락을 쓰는데 소름돋게 잘 맞아 떨어진다. 유후!!(유레카) 나는 나 자신을 믿어주고, 자유의지를 주고 싶은거다. 그래, 하니야. 너에게 달렸어. 두려워 할 대상을 두려워 하는 삶. 돈이, 특정 사람이 아니야. 무엇보다 난 널 믿어. 넌 잘해왔으니까 :) 맨날 영어배웠을 때 시냅스하던 킵고잉! 킵고잉! 어디로 킵고잉할지 모른다면 잠깐 쉬어가는거라 생각하자. 그리고 다시 길을 찾으면 전진- 또 멈출 수도 있는거고. 넌 자유한 사람이니까!
나는 너를 믿는가?
너는 나를 믿는가?
난 너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가?
너는 나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가?
자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