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교회언니에게 엽서 하나를 받았다.
달을 표현한 모과, 무언가 잡을 기세로 해녀복장을 완비한 그녀는 새와 구름과 나란히 하늘을 난다.
미쳤다. 다시 봐도, 자꾸 봐도 저 표현력은 미쳤다. 디자인은 마음을 녹이는 힘을 가졌다.
아이디어 하나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창구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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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를 꿈꾼다.
선한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험하는, 그 안에서 이상하리만큼 평안을 누리는 나.
어쩌면 저 자체도 나의 욕심을 갖고 또 무언가 바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럼 그 반대일까?"라고 생각하니 또 저게 맞는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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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설교를 들으며 생각했다.
'또 내 코 앞에 닥친 상황에 집중했구나.'
무엇보다 신뢰가 없었다. 나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없음.
어떤 상황도 나를 이끌어줄 과정이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
알면서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믿는 과정은 어쩌면 내가 말로 내뱉으며 그것을 믿는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번 경우에도 그랬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은, 모든 상황에서 그 어떠한 것도 감수할 수 있는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긍정적인 것들만 올 수는 없다.
힘을 빼라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겠는 요즘이다.
그러나 그 힘을 줬다 뺐다하는 것이 나의 가장 솔직한 마음이다.
내려놓음은 미니멀리즘과 같다.
아, 아까 뉴스에서 잠깐 본 초소형주택과도 같은 거다.
상황이 그러하니 시선을 달리해 초소형주택 안에서 나의 삶을 즐기자-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
그러나 거기에서 중요 포인트는 우리가 사는데 사실 엄청난 부와 어마어마한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족할 수 있는 업, 경제, 사고방식, 관계 그런거면 사실 충분하다. 자족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자족하려는 결단은 또 다른 용기이고, 모험이다.
이건 또 다른 힘 빼기일 것이다. 아직은 그 쪽으로 힘을 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내 의지와 꿈, 내가 빛나고 싶어서 뭔가 이루려고했던 그것들에 대해 힘을 빼고 좀 더 멀리 그분의 시선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시점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 와중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도 하나님께도 당당하지 못할 걸 알기에
중간중간 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보려 한다. :)
저 해녀처럼 하늘을 날더라도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나는 것-
계속해서 꿈꾸며 나아가는 것-
무언가 낭만이 있고 꿈이 있는 삶-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바다였음에도 하늘을 날아보기도 하는 것-
그렇게 하늘에서도 바다에서도 자유했으면-
그러나 본질은 잊지 않고 챙기는 그런 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