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걸 그릴 거예요
"오늘은 우리 가족을 그려보자."라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한결 같이 대답을 한다. "시나모롤 그리면 안 돼요?" "커비 그리면 안 돼요?" "어몽어스 그리고 싶어요." "도라에몽 그리고 싶어요." "포켓몬 그리면 안 돼요?"
아이들이 사람보다 캐릭터를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현재 가장 사랑하고 생각하는 주제가 이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예쁘지도 멋지지도 귀엽지도 않은 사람 그리기보다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예쁘고 귀엽고 멋진 아이들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은 캐릭터를 그리면서 “너무 귀여워”를 수도 없이 외치며 방긋방긋 웃는다. 그래서 때로는 가족 그림 옆에 시나모롤이나 다른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고, 가족을 그리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캐릭터로 가족을 대신 그리기도 한다.
어른의 시선에서는 캐릭터를 그리는 것은 유희일뿐 아이들의 미술 교육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여러 대상을 그려보고 다양한 미술 경험을 해봤으면 하는 바람 또한 있을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캐릭터 그리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대상을 그리도록 유도를 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즐거운 마음으로 표현하고 그 결과물에 만족하는 것만큼 더 좋은 순간은 없다. 그 대상이 캐릭터라 할지라도 말이다.
미술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로서, 내 마음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것이 아동미술의 목적이라면, 캐릭터는 단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좋아하는 것을 그릴 수 있다는 마음이 지켜지면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다양한 대상을 그려보려고 한다. 캐릭터에 관심을 갖고 그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한 시절이다. 어느 때는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축구 선수를 그려보려고 하고 어느 날은 멋진 노을과 자연 풍경에 매료되어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캐릭터는 처음 보기에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그리려고 보면 세심한 관찰과 인내가 필요하기도 하다. 시나모롤은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귀여움을 표현하기 위한 독특한 특징 포인트가 있다. 나보다 아이들이 더더욱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포켓몬과 트랜스포머 같은 복잡한 캐릭터는 엄청난 집중력과 끈기를 요구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아이들은 집중하면서 마음에 드는 형태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려낸다.
오늘은 뭐 그려요?라는 짧은 질문에 순응하다 보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과 그림을 연결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또 캐릭터 그릴 거야?"라는 질문보다는 ‘어머나, 선생님도 시나모롤 너무 좋아 정말 귀엽다!’라며 아이와 같은 마음을 보여주면 아이의 눈은 반짝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