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r
그 생김새
"이게 무슨 배야?!"
한국과 호주에 공통적으로 있는 과일들은 이름과 크기만 다를 뿐 생김이나 맛은 거의 비슷한 것이 과일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예를들면 수박을 워터멜론이라, 사과를 애플이라 부르지만 생김과 맛은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선입견이라 알려준 과일은 '배'였다.
한국에서 영어로 'Pear'라고 배운 '배' 그런데 호주에 와 진열대에 놓인 Pear를 보니, 모양이 우리가 아는 배가 아니었다.
내가 사랑한 '배'는 추석 즈음에 나오기 시작하여 껍질은 연한 황금색과 황토색 어디쯤이고, 보통 두 주먹을 합친 것 보다도 큰 크기. 껍질을 까면 하얗고 즙이 많은 과육이 드러난다. 달콤하지만 오히려 시원한 맛, 겨울철 따스한 실내에서 먹으면 잠시 시원해지는 그 맛. 아삭거리는 소리까지 기분 좋아지는 과일. 짜장이냐 짬뽕이냐 같은 사과냐 배냐 선택을 우리에게 던지는 과일이었다.
불고기나 갈비를 재울 때 얇게 채 썰어진 배들이 들어가는 것도 좋았고, 보쌈김치를 만들 때 굴과 함께 배가 살짝 얹혀있어 사각거리는 느낌도 좋았다. 즙을 꽉꽉 눌러 담은 듯한 정성스러운 배즙들이 냉장고 한편에 자리 잡고 있으면 왠지 든든하고 건강해지는 느낌은 또 어떻고.
통째 과일
그런데, 그 배가 이 배라고? 모양은 조롱박에, 색은 초록이나 주황색으로 변하는 어디쯤이다. 아마 가장 놀랐던 것은 배를 먹는 방법이었다. 껍질째 먹는 문화.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어차피 벗길 껍질까지 깨끗하게 씻는, 유난히 껍질을 까먹는 문화이고 호주는 유난히 껍질째 먹는 문화이다. 껍질째 먹는 과일은 배뿐 아니라, 사과는 당연하고 복숭아 심지어 키위까지 먹는다.
이민 초기에 현지인을 식사 초대할 일이 있었는데, 그녀는 내가 내놓은 과일 접시에 두 번 놀랐다. 과일을 예쁘게 잘랐다는 것과 (그들 기준에서만) 껍질을 다 까놓았다는 것에. 왜 껍질을 까먹는지 궁금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국은 농약 사용 이유로 껍질을 까고 먹는 문화일 테고, 호주는 껍질에 있는 섬유질 같은 영양소 이유로 통째로 먹는다. 오렌지나 바나나, 수박처럼 껍질이 이미 분리가 되어있거나 딱딱한 과일들을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통째로 먹는다.
아이들 학교 간식시간에 과일 시간(fruit time)이 따로 있다. 그때도 아이들은 통째로 들고 온 과일들을 들고 다니며 먹다 놀다 한다. 그중 배 철에는 작은 사이즈의 배들이 인기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나의 눈에는 그저 비슷하게 생긴 배들이었는데, 어느 날 마트에 붙은 설명을 보니 배에도 종류가 있었다. 이름들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식감
이곳 배의 식감은 한국 배의 것과 전혀 다르다. 갓 딴 배들은 딱딱하지만 이내 곧 물러진다. 무르며 더 달아지긴 하지만, 갈아 만든 배 음료를 만들 정도의 과즙은 없다. 이쯤 되면 'Pear'와 '배'를 같은 과일로 두는 것에 물음표를 던져도 될 것 같다.
호주에서 배들은 베이킹과 더 궁합이 맞나 보다. 설탕 시럽에 절여놓았다가 사용하는 일도 잦다. 그러다 보니 복숭아 캔처럼 당도가 한없이 올라가고, 그것들을 디저트용 파이, 케이크이나 타르트에 사용한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그 맛에 적응이 안 되고 있다.
요즘에는 계절이 한국에 반대인 호주의 여름쯤에 가끔 한국의 나주배나 신고배가 수입되어 들어온다. 한인마트에 진열되어 있거나, 아주 드물게 코스트코에도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반가운 마음에 비싸더라도 몇 개 냉큼 주어 담는다. 여전히 조롱박처럼 생긴 배를 배라 부르지 못하고 둥글고 아삭한 '배'를 배라 여기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예술과의 만남
그런데 조롱박 모양의 배는 그 모양 때문에 인테리어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배가 주는 곡선은 섬세하고 비대칭적이서 예술을 표현하는 대상으로도 종종 사용되고, 다채로운 색상은 사실주의 미술과 추상 미술 모두에서 사랑받는 소재가 되어왔다. 서양 예술에서는 여자의 신체 곡선 비유로도 사용된다 하고,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상징도 있다고 한다.
배 모양의 조각들이나 인테리어 용품들이 많고, 정원에 배 모양의 설치조각 작품들도 종종 볼 수 있다. 호주 캔버라나 멜버른의 아트 갤러리에도, 그리고 미국의 보스턴에도 대형 배 조각 작품들이 있는 것이 아마도 그러한 이유인가 보다.
배를 대상으로 그린 화가 하면 떠오르는 한 명이 있다. 인상주의와 추후 입체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 화가 폴 세잔. 그는 과일을 대상으로 정물화를 그린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중 배를 그린 작품을 보며 그의 눈에 비친, 화가의 눈에 비친 배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꽃 (梨花)
모양과 식감도 다르지만 한국 배와 호주 배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꽃이다. 봄 철 정원과 마당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그 하얀 꽃은 그들이 생김은 다르지만 같은 종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주일, 아무리 길어야 2주를 넘기지 않는 그 작고 하얀 꽃들 아래에 돗자리 편 곳이 순간 낙원이 된다.
벚꽃과 매화의 봄을 부르는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작은 순백 꽃들이 잠시 피었다 진다.
어쩌면 배나무는 강한 엄마 같다. 꽃처럼 예뻤을 청춘을 고스란히 내어주고 그리 크고 단단한 열매들을 키워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