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도토리
멍뭉이와 산책하다 발아래 뭔가 차였다.
작고 동그란 것들, 앗 도토리다!
어느새 도토리들이 익어 땅에 떨어지는 계절이 성큼 왔단 말인가.
땅 위에 도토리들이 가득해지면 왠지 풍경이 재미있어진다.
도토리가 주는 귀여움 때문이겠다.
다른 계절에는 눈치를 못 채다가 가을 낙엽이 되어야 보이는 정감 있는 나뭇잎 모양,
그리고 이름 자체의 귀여움 때문이겠다. 도토리.
호주에는 도토리를 식량으로 주어 모아 먹을 다람쥐들도 없고,
도토리로 음식을 해 먹는 사람들도 없다.
넓은 자연에서 자란 큰 참나무들이 도토리 열매들을 수두룩 내놓지만
인기열매가 아니기에 나무 아래 땅 위에 흔한 표현대로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너의 이름은
사실, 나는 줄곧 이 나무 이름이 '도토리나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떡갈나무인가? 상수리나무인가? 하는 의문을 잠시 가졌고 참 이름은 참나무라는 것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도토리 열매를 맺는 나무가 도토리 열매가 아니라 참나무이고, 참나뭇과 아래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있는 것이라고. 왜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부끄러움도 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참나무로 와인 코르크를 만드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나무에 '코르크 만드는 나무'라는 싸인을 봤을 때도 그것을 참나무로 연결할 생각을 못해봤다.
참나무가 열일하는 나무였구나. 이름도 '참' 좋은데 말이다.
도토리로 무얼할꼬?
이곳에는 학교에서 1년에 방학이 4번 있다.
계절 사이에 2-3주 방학이 있고, 무더운 여름인 12월-1월에는 7주간이다.
한 해의 새 학기가 시작한 후 첫 번째 방학은 4월, 이때는 가을로 들어선 때이다.
그러면 김밥을 싸서 아이들과 아주 큰 나무들이 있는 곳들에 가서 도토리들을 줍곤 했다.
4월 방학 때면 했던 작은 리츄얼, 의식 같은 것이었다.
동글동글 도토리를 주울만큼 주고 던지고 놀면 나에겐 시간이 잘 가고 아이들에겐 즐거움이 남았다.
도토리를 줍다 벌레도 만나고 참나무가 주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누가 더 큰 걸 주웠나, 그야말로 도토리 키를 재며 깔깔거리다 웃다 보면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도토리를 주웠다고 다 가져오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에 주머니 가득 넣어왔지만, 창의력 부족한 엄마가 도토리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음을 아이들도 일찍이 눈 채를 챈 모양이다.
현지인들에게 외면당하는 도토리 신세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식량이다. 지천인 도토리들을 모아 도토리묵을 만드시는 분들도 봤다. 그저 대단하다. 어떻게 하는지 물어 여러 번 들었으나 전혀 감이 안 온다.
제일 먼저 도토리들을 깨끗이 씻어 껍질을 깬 후, 속껍질까지 제거하여 알맹이만 남긴다 (나는 여기서 이미 포기). 다음, 물을 넣고 곱게 갈아 죽처럼 만든다. 이 죽 같은 상태를 물에 담가 독성을 빼주는데 수일에 걸쳐 계속 물을 갈아주어 갈색 물이 빠져야 떫은맛이 사라진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물에 담가 둔 도토리 물을 그래도 두어 시간이 지나면 위쪽 맑은 물과 아래 도토리 앙금으로 분리가 된다. 이때 아래의 앙금만 말리면 도토리 가루가 된다. 묵은 아직 만들기도 전이다. 다시, 말린 도토리 가루에 물을 섞어 약불에 저어준다. 걸쭉해질 때까지 계속 계속. 투명한 갈색이 되면 비로소 묵 탄생. 틀에 담아 식힌 후 단단해지면 묵으로 잘라먹는다. 말만 들어도 정신이 몽롱해지는, 꽤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수작업들을 거쳤을 도토리묵이 왜 그리 쌌던 건지. 노동의 대가가 무시되었던 것은 아닌지 잠시 혼자 부르르 한다. 동시에 그 맛있던 도토리묵 무침, 묵밥 생각이 침이 고이면서 말이다.
엄마들은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했을까. 묵을 집에서 만들었다니.. 그때는 왜 그렇게 정성스레 만든 묵보다 다른 것이 더 맛있다고 했을까. 엄마가 손에 쥐었던 신기하게 생긴 모양의 묵칼과 잘라져서 흐물하기도 쫀득하기도 한 묵 위에 얹었던 양념장과 곁들인 그 묵 한 조각이 간절해진다.
나에게는 그런 재능과 부지런함은 도통 없기에 도토리들은 그냥 땅에 두기로 한다. 그림책에서 봤던 버림받은 도토리가 거대한 참나무로 재탄생할 때까지 기다리며 자연에 그대로 있어주길 바란다. 다람쥐는 없지만 포섬이라는 다람쥐 크기의 야생동물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열매들을 먹는다는데, 저 많은 열매들을 다 먹을 순 없을 테고 그러니 많은 도토리들은 땅에서 좀 쉬다 다시 자연으로 피어 날것이다.
도토리를 보다가
열매 시즌이 오니 도토리 열매가 있는 공원의 나무들마다 각각 다른 열매들을 맺고 있음이 이제야 보인다. 유칼립투스 나무의 열매, 검넛(gumnut)은 도토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작다. 유칼립투스 나무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열매도 다양하다. 수술 달린 꽃모양으로 피기도, 뾰족뾰족 가시볼처럼 맺히기도 한다. 다양한 열매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나의 열매에 대한 질문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을 오르며 나무처럼 어느덧 열매 맺는 계절에 있는 것 아닐까, 열매로 알게 되는 인생에 대해 혼자 묻고 답을 해본다. 도토리나무에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 가을이긴 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