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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연주자의 연습기록 16

쉼표도 연주의 일부다

by 슬슬

오케스트라에서 쉴 새 없이 활을 움직이며 연주하는 현악기와 달리 관악기는 중간중간 쉬는 마디가 존재한다. 길게는 몇십 마디까지 쉬다가 다시 타이밍을 맞춰 연주에 합류해야 한다. 연주할게 얼마 안 되니까 좋은 거 아닌가 싶지만, 숏폼에 오염된 현대인의 뇌로는 이렇게 길게 마디수를 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알게 된다. 쿵짝짝 세 박자에 맞춰 열 번만 쉬면 되는데 꼭 중간에 꼬여서 내가 지금 세고 있는 게 일곱 번째인지 여덟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차라리 쉬는 구간 없이 뭐라도 계속 연주하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쉼표는 부족한 숨을 쉬고 체력을 비축하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앞뒤 연주 방향을 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힘을 주고 충실하게 음표를 연주하다 마지막 음을 부드럽게 연주하며 쉴 것인지, 흐름을 타고 강하게 연주하다 마지막 음을 단단하게 울리고 쉴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쉼표 이후 다시 연주를 시작할 때 방향도 다르다. 여린 세기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연주에 합류할 것인지, 쉬면서 에너지를 모았다 힘차게 음을 쌓으며 등장할 것인지도 살펴야 한다.

직장인들에게 휴식, 휴일이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피곤하게 일하는지. 사실 지금 하는 일을 그냥 관두면 쉴 수 있지만 그렇게 쉴 수 없으니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쉬고 싶다는 모순을 계속 품고 출퇴근을 한다. 그러다 막상 쉬는 날이 생기면? 이 휴일을 알차게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또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날에는 쉬는 날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나 괜한 죄책감까지 느껴진다. 왜 나는 악보의 쉼표도 제대로 못 지키고 내 일상의 쉼표도 어영부영 보내는 것인지.

무언가 어려울수록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딱 핵심만 지켜야 한다. 쉼표는 쉬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니 정해진 만큼만 확실히 쉬면 된다. 애매하게 길게 연주하면 다른 악기에 방해가 될 뿐이다. 길어질까 봐 걱정해 짧게 연주한다면 내가 채워줘야 할 음이 비어버린다. 평일에 바빠서 피곤이 쌓이면 굳이 주말까지 졸린 눈을 떠가며 운동을 갈 필요가 없다. 운동으로 체력을 기르기 전에 잠으로 회복하는 게 먼저다. 주말 내내 별다른 약속도 없었고 그냥 무기력해서 연습도 못 갔다면 그것대로 평화로운 휴일을 보낸 거다. 이번 주말을 헐렁하게 보낸 만큼 다음 주말을 더 꽉꽉 채워서 보낼 수 있겠지.

힘을 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힘을 빼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내가 나를 믿지 못하니 쉬는 것은 곧 흐름을 놓쳐버린 것이나 불안한 것으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얻는 쉼이고 악보대로 충실히 지키는 쉼표인데 왜 나는 충분히 쉬지 못할까. 그러니 이번 주말 연습할 때는 메트로놈을 틀고 정확히 쉬는 박자를 지켜야겠다. 아마추어 연주자에게는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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