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나만의 루바토 찾기
누군가가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일단 예전부터 꾸준히 해왔던 것이어야 할 것 같고, 오랫동안 해온 만큼 또 잘해야 할 것 같다. 너무 흔한 대답을 하자니 취미가 없는 사람 같고, 너무 특이한 걸 하자니 괜스레 부끄럽다. 대답을 하고도 상대의 반응이 신경 쓰인다. 깜짝 놀라며 나를 추켜세워주면 그 정도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기 바쁘고, 시큰둥하면 그러는 넌 얼마나 잘났기에 라는 생각에 은근히 약이 오른다. 그렇다면 나는 진짜 왜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걸까?
일단 나에게 취미활동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할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쉬는 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휴식이고 회복이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더 답답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일단 뭐라도 하고 싶은데 일은 당연히 싫고, 복잡하고 귀찮은 것도 꺼려지고, 낯선 것은 또 에너지가 든다. 이럴 때 취미 연주자는 '그냥 연습실이나 갔다 올까'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집 근처 연습실을 한 시간 예약해 대충 옷을 입고 악기와 악보만 들고 다녀오면 된다. 가서 설렁설렁 연습하다 보면 그래도 한 시간의 삼분의 일 정도는 집중해서 열심히 연습한다. 연습하고 나면 또 배가 고프니 오는 길에 장도 보고, 그럼 반나절이 훅 지나간다. 이번 휴일도 생산적인 일 하나 했다는 뿌듯함도 함께.
몸도 안 좋고 연습가기도 싫을 만큼 귀찮은 날에는?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찾아보면 된다. 악기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새로 접하게 된 곡, 어디선가 들어본 작곡가, 어깨너머로 본 다른 악기 등 클래식 음악 전반에도 관심이 생긴다. 이제는 계속 듣고 싶은 곡도 생겼다. 하나의 곡을 다양한 연주자, 다양한 악기, 다양한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클래식 음악의 장점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집안에 음악을 틀어놓고 누워서 감상하다가 또 의욕이 올라오면 음악을 배경 삼아 책도 읽고, 청소도 하고. 자연스럽게 뭔가를 하게 만들어준다. 때로는 그대로 낮잠에 빠지기도 하지만 휴일에 클래식을 들으며 자는 낮잠만큼 우아한 게 또 어딨겠어.
여기서 더 시간과 에너지가 남고 돈도 받쳐준다면 직접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한다. 유명 연주자의 공연은 돈이 있어도 티켓을 못 구해서 문제지만 몰라서 그렇지 저렴한 가격에 이런 귀한 음악을 들려주다니 할 정도로 우리나라엔 많은 공연이 있다. 프포그램이 내가 아는 곡이어서, 이번에는 이 악기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어서, 시간이 되니까, 장소가 가까우니까 등 하나의 이유만 맞으면 공연을 못 갈 이유도 없다. 학창 시절 콘서트는 아이돌 가수의 공연이 전부였지만, 취미 연주자가 된 이후 콘서트는 더욱 무궁무진해졌다.
루바토는 연주자가 박자를 가지고 노는 것을 멋있게 나타내는 음악 용어다. 정해진 박자를 세는 것도 버거운 취미 연주자에겐 시도할 의욕조차 안나는 것이지만, 나의 일상은 내가 전문가니까 할 수 있다. 끝도 없이 늘어지는 휴일 오후를 활용해 연습을 할 수도 있고, 촘촘히 약속으로 빼곡한 일주일 중 하루를 쪼개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있다. 취미를 가진다는 것은 새로운 색깔의 색연필을 얻는 기분이다. 나의 세상은 전보다 훨씬 더 다채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색으로 칠할 수도, 지울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으니 나는 내 취미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이번 주말도 연습하고 온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