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닝 했나요?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교과서위주로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는것이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듯 뭐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악기를 잘 연주하고 싶으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면 뭘 연습해야 하나? 가장 쉬워보이면서도 어려운 음정 연습을 해야한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선생님이 강조하시니 그렇구나 할 뿐.
나는 원래 성격이 둔감하기도 하고, 하는 일도 란스러운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소리나 소음에 별로 신경을 안쓴다. 주변이 시끄러워도 그닥 거슬리지도 않고 잠도 잘 잔다. 대도시 속에서 살아가는데 아주 도움이 되지만 음악을 배우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절대음감도 상대음감도 아닌 그냥 무음감인 수준이다. 음정이 높다 그러면 그런가보다, 낮다 그러면 또 그런가보다 수긍은 빠르다. 음정이 제일 기본이고 중요하다던데 왜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걸까? 난 항상 거기서 거기로 불고 있는데 왜 내 음정은 매번 달라지는거지? 전문 연주자들도 음정이 제일 까다롭다던데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음정은 특히 여러 악기가 함께 화음을 쌓는 합주에서 꼭 필요한 요소다. 관악기는 숨을 불어 음정을 맞추다보니 호흡양이 많은지 적은지, 숨을 부는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에 따라 음정이 달라진다. 그래도 서당개가 삼년을 배운지라 내가 숨이 과하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온다. 하지만 여기에 다른 악기가 연주하는 음이 쌓이면 내 귀는 작동불능 상태가 된다. 일단 다른 악기 소리밖에 안들리니까 내가 지금 어떤 상태로 불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면 더듬더듬 실루엣에 의존해 길을 찾는 것처럼 이 정도로 불었을때 소리가 가장 예뻤던 것 같은데를 눈치로 따라간다. 그러니 전문가인 선생님 귀에는 바로 틀린 음정이 들릴 수 밖에.
이렇게 중요하고 어려워서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하지만 이것만큼 연습하기 싫은 것도 없다. 튜너기를 켜놓고 한 음을 계속 부는게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무엇보다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점이 제일 재미없다. 복잡한 리듬과 어려운 손가락은 연습을 통해 점점 완성되어가는게 실시간으로 들린다. 하지만 음정은 맞게 불어도 그래서 뭐 이제 어쩌라고의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왜냐면 이제 솔 음정을 알맞게 불었으니 거기서부터 리듬, 셈여림, 빠르기를 또 맞춰 나가야 하니까. 심지어 음정은 다른 잔머리를 굴릴 수도 없다. 손가락은 텅잉을 생략하고 이음줄로 하거나, 박자는 다른 악기 소리에 힌트를 얻어 카운트하거나, 리듬은 음표를 쪼개서 생각하면 엇비슷하게라도 악보를 쫓아갈 수 있다. 하지만 3옥타브 미를 알맞게 불어야 하는데 자꾸 음정이 엇나간다면 해결법은 하나다. 알맞는 음정이 나오도록 숨을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지.
나 좀 오래 배운것 같아 하고 우쭐거리는 못된 버릇이 나올때 마다 튜너기를 켜고 마음을 다잡는다. 어려운 곡은 연주하지 못하더라도 도레미파솔라시는 제대로 불어야 면이 서지 않겠나. 다이어트를 하려면 건강한 식사와 적당한 운동이 기본이다. 자꾸 기본을 외면하고 지름길만 찾다보면 요리조리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오게되어있다. 마음으로 이해가 안된다면 머리로 계속 반복해서 그냥 하는 수 밖에. 그러니까 내일은 저번에 하기 싫어서 넘어간 음정 연습을 해야 한다. 취미든 일이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