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7개의 대출

정리

by slowphy


한도 감액 문자를 받았던 날,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었다. 주택청약부금 해지하기. 사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


문자를 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신분증을 들고 은행에 찾아갔다. 접수를 하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가슴이 너무 두근거렸다. 그렇다. 일을 벌이는 거에 비해 새가슴이다. 아니 큰 액수의 거래는 그전까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대출을 받아 쓰는 것도 찔끔찔끔, 그것도 휴대폰으로 톡톡 두드리다 보면 해결되니 가능했던 거다. 게다가 이건 내 돈이 아니니까. 아무튼 죄지은 사람의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됐다.


'주택청약부금 해지하려고요.' 결국 이걸 해지하는 날이 오다니. 내가 가입한 것도 아니고, 내가 쌓은 돈도 아니다. 넉넉지 않은 집안이었지만, 훗날 내 집마련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빠가 만들어주셨다. 매달 십만 원씩, 수년간 쌓여 1000만 원이 되었고 그 이상은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주택부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 시작한 때가. (TMI지만, 이 통장으로 2번의 청약을 시도해 봤지만 광탈당했다.) 더 이상 입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아빠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인 셈이다.




쿵쾅대는 심장에 비해 청약부금을 해지하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해지하면 손해라며 직원이 말을 걸까 걱정했던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담보 대출을 6번에 나눠 받았다는 사실을. 나는 그 당시 비상금 대출 여러 개와 다른 신용대출이 조금 더 있었는데, 주택담보대출과 합해서 총 11개의 대출을 갖고 있었던 거다. 이 전까지는 얼마 큼의 대출을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연히 주변사람도 모른다.) 이렇게 숫자로 적어놓고 보니 내 신용등급이 나의 경제 생활에 비해 오히려 감사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간 1300만 원으로 불어났던 돈이, 대출을 청산하며 200만 원 정도가 되어 통장 잔고로 들어왔다. 미뤄왔던 큰 일을 해결한 느낌이 들었다. 시원했다. 하지만 곧이어 마음의 빚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빠가 이걸 알게 되는 날, 나는 어떻게 될까.'


'이제 200만 원으로 뭘 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처리하기로 했다.


위태롭게 600점대를 유지하던 신용점수가 500점대로 떨어지기 직전, 카드값을 내기 위해 중금리 대출을 받았었다. 지난 얘기를 조금 더 이어서 해보자면 2024년 11월, 첫 페어 이후 300만 원의 카드 대금이 남았다. 그리고 2025년 1월에 한 번 더 페어에 참가하면서 재고를 처리하기는커녕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데 돈을 추가적으로 쓰면서 카드 대금을 줄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쌓여있던 문제의 신용카드에는 리볼빙 이월금액까지 있었으니, 뒷얘기는 하지 않아도 이해하시리라.


나는 매달 카드값에 시달렸다. 그래도 연체는 하지 않으려 아등바등 애를 썼다. 그러다 직전 3월, 겨우겨우 2 금융권 대출을 받아 카드값을 냈다. 그리고 신용점수는 추락했다. 썩은 동아줄이었던 거다. 신용점수 600점 대도 충분히 저신용이지만, 500점 대는 금융사에서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 들었다. 내가 그 인공이 되다니. 청약대출을 해지하고 남은 돈으로 중금리 대출을 갚았다. 그리고 4월 11일, 일주일 만에 신용점수가 다시 600점대로 올라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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