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별명 '프로일벌러'

반복

by slow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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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몰랐다. 친구가 어느 날 '너는 꾸준히 뭔가를 하는구나'라고 해줘서 그제야 알게 됐다. 나처럼 모든 사람이 일을 벌이며 사는 게 아닌 거란 걸. 그전까진 '이 정도'가 일을 벌이는 축에 들어가는 건지도 몰랐다. 몇 천 만원씩이 아닌 몇 백만 원씩, 소소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근데 그걸 돈도 없이 빚을 내가며 일을 벌이는 사람은 없을 테지.


2024년, 나는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일을 벌였다. 바로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참가. 수입원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기도 했지만, 사실 업을 바꾸고 싶은 욕구가 컸다. 아무튼 나는 내 욕심으로 또 일을 벌였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렸고, 작은 전시회에 참가하고 SNS를 운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것을 밑판 삼아 2024년 여름에 한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참가 신청을 했다. 참가비는 거의 백만 원 정도. 당연히 모아둔 돈은 없었다. 그래서 참가비를 남자친구에게 생일 선물이랍시고 현금 선물을 강제로 받아냈다. (써놓고 보니 나는 단단히 미친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생활비와 월세를 모두 내가 버는 돈으로 지내고 있으니, 괜찮은 거라 합리화를 해본다.)


겨울에 시작하는 페어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참가비 외에도 들어갈 돈이 상당히 많았다. 사실 얼마나 써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여러 페어를 전전하며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하는지 구경을 많이 다녔던 덕분에,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부스에 걸어둘 현수막이며, 상품 진열대, 책상을 덮을 천, 상품을 보관해 놓을 보관함까지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거기에 더해 판매할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얼마나 만들어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3일간의 페어기간 동안 얼마나 팔릴지, 내 그림이 수요가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냥 최대한 잘하고 싶었고, 그래서 자꾸만 욕심을 냈다. 그래서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찍어내는 품목이 점점 늘어났다. 그 돈은 어떻게 감당했느냐, 바로 카드다.




이전에 노트로 능력 이상의 돈을 날려 먹었지만, 그래도 생활만큼은 체크카드를 쓰며 버는 만큼 쓰는 삶을 살았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삶. 비교적 안전했던 상태였다. 그런데 페어에 참가하기로 결심하고 제대로 해보고 싶었던 나는 사업자 등록과 가맹점 등록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자영업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사업자 카드를 두 개나 만들게 됐다. (사실 그 사이에 만든 신용카드가 하나 더 있다. 이 얘기는 아주 골치 아프니 다음에 해보기로 하자.) 그렇게 새로 생긴 두 신용카드의 한도는 각각 100만 원, 200만 원. 첫 페어를 준비하며 두 카드의 한도를 모두 다 채워서 썼다. 예산을 세웠었지만 준비하다 보니 뭔가를 더 사야 했고, 자잘하게 계속 추가하게 되면서 다른 카드까지 쓰게 됐다. 300만 원 이상의 돈을 첫 페어 준비에 썼던 거다. (사업자 카드가 특별한 혜택이 있을 것 같지만 자세히 알아보니 나에게 맞는 혜택은 그다지 없었다. 나중에 세금 신고를 할 때 조금 편하다는 정도. 괜히 나의 소비욕만 더 커졌다.)


그리고 첫 페어로 번 돈은 100만 원 정도. 참가비와 준비금까지 합하면 400만 원을 썼다. 첫 페어 참가치고 100만 원이면 잘 번 편이라고 들었지만, 그 일로 어마어마한 카드값이 생겨버렸다. 물론 이 카드값을 감당한 어떠한 자산도 없는 상태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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