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하는 소비력

회상

by slow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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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을 살면서 다녀온 해외여행은 단 두 번. 명품백 한 번 사지 않고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도 없이, 카드값에 허덕이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질 않는다. 당연히 도박도. 그런데도 그런 일은 가능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어디에 돈을 쓰며 살았는지 생각나는 대로 써본다.


우선,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는 '문화비'로 쓴 돈들.


- 하루에 세 편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하기.

사실 이건 딱 한 번만 해본 일인데, 세 편의 영화 내용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그 이후로는 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영화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꽤나 관심을 끌던 시기였고, 누군가와 놀거나 데이트를 할 때는 반드시 영화관을 가는 게 코스였다. 당연히 팝콘과 콜라까지.


- 서너 권의 책을 한꺼번에 산 후, 보지 않기.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사는 건 더더욱 좋아한다. 꽂히는 장르나 주제가 있으면 꼭 서너 권씩 한꺼번에 산다. 그 분야의 지식을 모두 습득하겠다는 욕심으로. 그리고 그 열정이 오래가면 좋으련만, 쌓아두는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식어버리거나 다른 분야에 관심이 가곤 했다. 그래서 여전히 읽지 않은 채 쌓여있는 책이 많다.


- 인강 플랫폼에서 충동적으로 결제하기. 그것도 할부로.

가장 욕먹을 만한 에피소드를 하나 얘기해 보자면, 유명 외국인이 광고하는 영어 강의를 결제한 적이 있다. 외국어 하나쯤 유창하게 하는 건 모두의 꿈이자 버킷리스트라 생각한다. '비싼 돈을 들이면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미루기만 하던 외국어 공부를 결제와 함께 결심했다. 그리고 배송 온 교재를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물론 인강도 한 편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가끔 '돈을 모으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멍청소비 중 하나로 택시비를 많이 꼽는데, 나는 택시를 탈 일이 없었다. 그럼 얼마나 더 바보같이 소비했는지 살펴보자.


- 쇼핑몰에서 옷을 산 후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환불하지 않고 버리기, 그리고 다시 쇼핑하기.

지금은 절대 하지 않는 짓이지만, 예전에 나는 '환불'이란 개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살았다. 단지 귀찮아서. 바지가 생각보다 핏이 예쁘지 않거나 블라우스가 예상보다 너무 타이트하거나, 소재가 별로거나 색깔이 달라서 보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구석에 처박아뒀다. 그런 옷을 한 번, 또는 전혀 입지 않고 계속 구석에 뒀다가 입지 않는 옷이 가득 쌓였을 때 한꺼번에 버렸다. (나는 사는 만큼 버리는 것도 잘한다.)


- 하루에 카페 두 번 이상 가기. 배가 불러도 디저트는 꼭 시키기.

카페는 거의 매일같이 갔다. 그것도 모자라 두 번씩 가는 날도 있었다.

오전에 집에서 나와 서점을 가거나 전시회를 보고 카페를 가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문구류나 소품을 구경한다. 그렇게 온종일 돌아다니다 다리가 아프면 다시 카페를 간다. 그리고 케이크나 빵을 같이 사서 또 먹는다.

일이 많지 않았던 주말이면 꼭 이렇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가끔 있는 휴일에도.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하루에 혼자서 20만 원은 거뜬히 쓴다. 서점에서 책 사며 5만 원, 카페에서 2만 원, 화장품이나 문구류를 사며 7만 원(비싼 문구류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졌다.), 오후에 카페를 가서 또 2만 원. 그리고 집에 돌아오기 전에 저녁으로 먹을 것들을 사다 보면 2만 원. 한 달에 4번만 해도 꼭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100만 원은 쓸 수 있다.


- 충동적으로 백화점에서 화장품 사기.

많이 반성한 후 끊은 지 오래됐지만, 15년 정도는 했던 것 같다. 백화점에 구경을 가서 마음에 드는 립컬러를 두세 개씩 사거나, 쓰고 있는 화장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로운 걸 샀다. 꽤 돈이 많이 들어가는 품목들을 사는 편이었는데, 기초라인을 바꾼다던가 파운데이션을 바꾼다던가, 아이섀도 팔레트를 산다던가 했다. 그러고 잘 썼으면 좋았겠지만, 충동구매를 해보신 분들은 아실 거다. 살 때만큼의 설렘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대망의 '환장 콜라보'가 남았다. 바로 다이어트와 폭식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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