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2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어려서부터 '돈 쓰는 맛'을 알아버린 나에게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런 엄마에게 참 미안해지고, 말할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앞서 고백했던 환장의 소비력에 이 이야기까지 털어놓기가 사실 겁이 난다. '진짜 미친 사람이구나' 하며 도망갈지도. 그렇지만 나의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써보기로 했다.
잦은 이사와 계획 없는 소비는 텅장을 만든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마련해 준 돈을 몽땅 날려먹었다.
거의 10년 전, 서울에서 살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전세금으로 몇 천만 원을 마련해 주셨다. 몇 푼 벌지도 못하면서 월세까지 쓰게 하려니 마음이 아파서였다. 누우면 천장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코딱지만 한 집이었다. 한 동안은 벌레와 씨름하며 살아야 했던 낡은 집이지만, 서울에서 출퇴근하며 사는 삶은 그 당시 나의 로망이었다. 그런 집에서 꾹 참고 오래도록 지냈으면, 나는 지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몇 년 뒤에 나는 남친을 따라 이사를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꼭 이사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때의 나는 하고 싶었나 보다. SUV 차량 한 대에 다 실리는 작은 짐을 싣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아껴 살았다면, 엄마가 마련해 준 돈에 내 돈을 합쳐 더 괜찮은 전셋집을 얻을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방에 내려가서 더 적은 보증금으로 조금 더 큰 집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했다. 게다가 전에 살던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하늘이 보이는 집이었다. 나는 그 집이 좋았다.
서울에서 전세자금으로 묶여있던 돈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그 돈을 새 집에 넣을 가구들을 사는데 썼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반년 만에 다시 이사를 하게 됐다. 그것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비용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그때 산 가구들을 다시 처분해야 했다. 당근으로 팔았던가 버렸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리해야 할 가구가 많지 않았던 것만 기억한다. 널찍한 침대와 식탁으로 썼던 길쭉한 책상, 그리고 의자 두 개. 버려야 할 큰 짐은 세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새 집으로 이사를 와서 다시 가구들을 사다 넣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다시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들어간 집에서는 새로 사야 할 가구가 많지는 않았다. 코딱지 만한 오피스텔이었으니까. 거기에서 몇 년을 살고난 후, 오피스텔 월세와 관리비를 합친 돈이 웬만한 투룸 월세 가격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넓고 옵션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그리고 새 살림을 채워 넣는데 남아있던 그 돈을 썼다. 엄마가 마련해 준 돈은 세 번의 이사를 다니는 동안 천천히, 의미 없이 사라졌다.
사실 이사를 결심할 때에는 그렇게 큰돈이 들어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인테리어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월셋집이었고, 사들이는 가구들도 몇십만 원이면 족하는 것들이었으니까. 나를 몰랐던 거다. 꼭 필요한 가구가 아닌 것들도 살 수 있다는 것과 러그나 쿠션도 인테리어 비용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쓰고 나서야 많은 돈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계약을 다 채우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이사 나온 집의 월세를 몇 차례 냈고, 이사를 나올 때마다 밀린 월세를 내느라 보증금이 깎여나갔다. 맞다. 환장하는 소비력에 이사까지 합쳐져 어마어마한 낭비를 했다. 다이어트와 폭식만큼이나 뼈저리게 후회하는 순간들이다.
엄마는 이 사태를 아직 모른다. 내가 아직도 서울의 그 코딱지만 한 집에 살고 있는 줄 안다. 영원히 모르도록 하는 게 나의 숙제다. 내가 마음의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말이다. "엄마, 그동안 고마웠어."라며 그 돈을 다 돌려주는 날이 성큼성큼 다가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