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엉망인 소비습관을 세 편에 걸쳐 낱낱이 공개했다. 사실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남기는 글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란 생각 덕분에 그렇게나 솔직하게 쓸 수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관심을 가져서 참 부끄럽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 그래도 아주 막살지는 않았어요'라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해보고자 한다.
카드연체내역
환장하는 나의 소비력에 비하면 잘한 일들이 턱없이 부족한 편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얘기해 보자면 '카드 연체내역'을 만들지 않은 것.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만, 수입이 생기는 대로 카드값을 내느라 2년간 허덕이던 나에게는 아주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두려움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드 대금 결제일이 하루 지나면, 약간의 연체금이 늘어날 뿐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는다. 어서 카드값을 납부해 주길 원하는 AI의 독촉 전화가 조금 성가신 것만 빼면 말이다. 이틀이 지나도 별 일은 생기지 않는다. AI 전화를 너무 받지 않으면 상담사가 전화가 온다는 것 정도. (TMI를 하나 써보자면, 나는 아직도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산다. 원래도 전화를 싫어했지만, 한동안 매월 말일만 되면 카드 대금 납부 독촉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던 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러다 3일, 4일쯤 지나면 카드대금을 연체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친절한 문자가 온다.
그래도 여전히 납부가 되지 않을 때에는 카드가 정지된다. 그리고 카드값을 전액 납부한 후에야 다시 카드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렇다. 겪어봐서 아는 일이다. 연체하고 싶지 않지만 카드대금을 납부할 수 없어서 5일, 7일을 피 말리는 기분으로 살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신용정보사에 내 정보가 공유되는 일은 막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마지막날까지 버텼던 적이 많다. 그럼에도 잘 되지 않았던 때에는 단짝 친구나 남친에게 급전을 빌려 겨우 무마했다. 써놓고 보니 온전히 내 힘으로 해결한 일이 아니라 부끄럽지만, 아무튼 카드 연체내역은 없도록 했다. 그게 그나마 빠른 신용 점수 회복에 도움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중금리 대출과 카드론
신용점수를 아주 빠르게 출렁이게 만들고 싶다면, 중금리 대출을 받으면 된다. 이미 많은 대출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중금리 대출을 받았던 나는 덕분에 신용점수가 500점 대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단기카드대출이든 장기카드대출이든, 대출은 대출이고 금리가 19%가 넘는다. 현금 1, 2만 원 부족해서 대출을 받아도 신용점수는 내려간다. 그렇더라.
주택부금을 해지하고 남은 돈으로 중금리 대출을 청산한 이후, 무분별한 대출을 받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사실 대출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었다고 얘기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신용점수를 올리는 동안 대출을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텔레비전에서 자주 광고하는 캐피탈 대출까지 알아보기도 했다. 아마 대출 승인이 났다면 그런 고금리 대출도 받았을 거다. 그런 곳에서 거절을 당하다니, 인생 바닥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운이 좋았다.
아무튼 나는 계속 일러스트 페어에 참가하고 다른 일을 벌이면서 카드값을 줄이지 못했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위기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한 해동 안에는 1 금융권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애를 썼다. 본업으로 벌어들이는 돈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카드 연체도 없이 대출 원리금 연체도 없이, 덕분에 2025년을 잘 넘겼다.
채무조정 지원제도
신용점수가 500점 대가 되고 나서, 채무조정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불어나는 리볼빙에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모르는 대출금이 나를 죄여왔다. 앞날이 캄캄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도움을 받는 게 맞는 상황이진 않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지켜내고 싶었다.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채무조정기간 동안 일정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카드를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알려지는 일은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그런 생활을 한다면 티가 나지 않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느리더라도 내 힘으로 해결하길 마음먹었고, 나에게 맞는 결정을 했다고 믿는다.
2025년 늦가을, 그렇게 나는 5개월 만에 신용점수를 700점대로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