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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eader Jun 17. 2023

달리기로 했다

아직 시작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걷기만 15년을 꾸준히 해온 내가 달리기로 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무언가를 깨부수고 해내었을 때의 짜릿함을 아시는지? 

누가 오랜 시간 동안 걷기만 하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조금만 뛰어도 다음날 무릎이 시리고 걷기 불편할 정도로 통증이 왔다. 그러다 나이 들어 고생한다, 걷지도 못한다, 하는 주위의 얘기를 하도 들어 스스로도 무릎 연골이 이미 다 닳아서 ‘뛸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려버렸다.  이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다. (라고 믿는다) 지난해 8월에 연달아 온/오프라인 두 개의 러닝 클럽에 조인하게 되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도, 찾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치 누군가가 내가 가는 길에 이 두 클럽을 딱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리고 두 명의 선지자를 (유니스님과 케이님) 보내 나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꿈꾸는 러너. 온라인 클럽명이다. 얼마나 달콤한가. 

꿈조차도 꾸어 보지 않았다. 내가 러너가 되리라는 건. 하물며 마라톤이라니

이 꿈같은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얼마나 몸치 인가부터 풀어놓아야 한다.


나는 태어나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보다 더 운동을 못하는 사람을 만나본 일이 없다. 뻥이 아니다. 학창 시절 반 친구들 중에도 항상 내가 젤 못하는 골칫거리였고, 주변에 스쳐 지나간 사람들 중에 가끔 ‘저도 진짜 운동 못해요’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반가워서 맞장구치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래도 나보다는 한수 위다. 


얼마나 운동을 못하는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줄줄이 늘어놓다 보면 한도 끝도 없고 이보다 더 웃기는 코미디가 없다.  빨리 달리기는 당연 꼴등, 오래 달리기는 운동장 한 바퀴를 채 못 돌아 쓰러져 드러눕고, 매달리기는 시작! 하면 바로 떨어지고, 뜀틀은 올라타기만 했지 뛰어넘어 본일이 단 한 번도 없다. 

뭐 요 정도는 애교이고,

윗몸 일으키기? 바닥에서 어깨만 살짝 떨어지는 크런치 자세 더 이상 절대 안 올라간다. (처음이라 그렇지 계속하다 보면 다 해요- 하는 소리 오 십오 년째 듣고 있다) 공에 맞는 걸 무서워해서 공을 가지고 하는 건 피구 같은 놀이도 당연히 못한다. 그래도 친구들이 끼워 줬는데 항상 다른 팀 선수 옆에 조용히 숨어있다 끝까지 살아남아 맨 마지막에 크게 한방 맞는 그런 애가 바로 나다. 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수영을 배웠으나 끝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잠수만 겨우, 중 고등학교 때는 테니스 레슨을 했지만 나에게 날아오는 공 두 번을 받아치지 못해 선생님이 포기. 신기하게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전거는 어찌 어째 배워 학교 운동장을 돌 정도로는 탔다. 문제는 대학 때 남동생 자전거를 겁도 없이 올라타다 바로 넘어져서 다리를 시멘트 바닥에 싹 갉히고 나서는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 됐다. 억울하다. 

이 정도면 감이 오시는가, ‘아냐 내가 더 못 해’ 하고 도전할 분 계시는지?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평생을 운동하고 담쌓고 살아도 될 줄 알았다. 젊으니 건강을 염려할 때도 아니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있나, 불편할 일 눈곱만큼도 없었다. 문제는 서른일곱에 첫째를 마흔에 둘째를 낳고 쉽게 빠지지 않는 살을 어찌해야 하는가였다. 어느 날 쇼핑몰에 갔다 거울에 비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웬 낯선 아줌마를 보고 충격을 받아 사태의 시급함을 깨달았다. 


그래 걷기라도 해보자. 

시작했다 안 할 수도 있으니 혹시 몰라 새것 같은 중고 트레드 밀 (주위에 빨래 걸이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을 싸게 장만하여  살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십 대와 오십 대 중반 지금까지 죽 걷는 사람이었다. 잠깐씩 뛰기도 했지만 1마일 이상 뛰어본 적은 없다. 운동만 한건 아니고 느슨한 식단 조절과 병행해서 하긴 했지만 내가 이십 대에 입던 옷을 입기까지는 십 년이 넘게 걸렸다. 지금은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어가는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내가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 운동을 하는 이유는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 나옴을 몸소 체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자고 화장실도 잘 가고 감기도 잘 안 걸리고 딱히 어디 아픈 데 없이 몸이 편안하니 마음도 안정되고 넉넉해진다. 단순히 살을 빼자고 시작한 운동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주위에서 끈기 있다고들 하는데  젊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다. 육체적 고통에 약한 사람이고 엄살이 심해 조금만 힘들다 싶으면 금세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새벽 두 시 전에 잠이 드는 걸 죄악시하던 야행성이었는데 운동할 시간을 쪼개 찾다 보니 새벽 기상을 하게 되고 어느 날 새벽형 인간으로 거듭나 있었다. 그리고 이 새벽형의 나 자신이 훨씬 밝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적극적이 되는 걸 알았다. 웬만해선 화내거나 짜증 날 일도 별로 없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도 약하거나 쉽게 해소가 된다. 갱년기를 지나면서도 딱히 몸의 변화를 못 느끼고, 핫 플래시나 갱년기 우울증 같은 거 없이 보냈다. (지나간 거 맞겠지?)  이런 나의 변화에 나 이외에 가족들도 혜택을 받는다. 그중 남편이 가장 큰 수혜자다. 몸이 아프다고 불평을 하나 운동할 시간도 겨우 쪼개는데 잔소리할 시간이 어디 있으며, 아이들은 초등학교 이후부터 엄마는 바쁜 사람이니 너희들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알아서 해라 하고 간섭하지 않으니 좋아한다. 아내가, 엄마가 뭘 하든 적극적으로 서포트 해준다.


다시 달리기로 돌아가서,  달리기 한 지 오 개월쯤 되는 요즘 운동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고 있다. 처음에는 1분도 제대로 뛰지 못해 헉헉 거렸는데 함께 하는 사람의 가르침과 유용한 팁들을 받아 5-6마일 정도는 쉬지 않고 거뜬히 뛴다. 물론 스피드를 내는 건 아니고 천천히 나만의 페이스로. 첫 한두 달은 열정이 지나쳐 10K, 하프 마라톤까지 시도하며 무리하다 무릎, 발목 부상으로 쉬어야 해서 이러다 영 못 뛰는 거 아닌가 겁이 덜컥 나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다.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살살 걷기와 뛰기를 병행하며 시간과 거리를 늘여가니 어느 날 꿈만 꾸던 쉬지 않고 뛰기가 가능해졌다. 한 5 마일 정도 뛰고 나면 러너스 하이라는 게 이런 건가  할 정도로(물론 맛보기 정도겠지만) 기분이 맑아지고 차분해지며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경험도 했다.


혼자였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함께 다양한 종류의 달리기 책을 읽고 배우고 나누며 러닝 지식을 쌓고 서로를 서포트 하는 <꿈꾸는 러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나 같이 달릴 수는 없지만 지역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온 라인의 큰 장점이 있지 않는가. 미 전역과 한국에서까지 다양한 장소, 날씨, 마라톤 등 사진으로 달리기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실질적으로 마라톤 트레이너 라이센스를 가지신 분이 이끄는 로컬 마라톤 클럽 소칼 러너스의 도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달리기는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 진정한 나로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십 대 중반을 지나는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걸어 화장실에 가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웃으며  조용히 평화롭게 가고 싶다. 나는 잘 죽기 위해 더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 계속해서 뛸 것이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한다면 정신도 오래도록 맑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무릎은 어떻게 되었냐고? 너무 멀쩡하다 오히려 전에 계단 오르고 내려올 때 시큼하던 것도 사라지고 매일 3마일 이상 뛰어도 아프지 않다. 곧 하프 마라톤은 기록이나 스피드에 연연하지 않고 천천히 뛴다면 많이 힘들이지 않고 즐겁게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직까지도 달리기를 망설이는 분이 있으신가? 


‘그래?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네’  라거나 ‘한번 시작 해 볼까?’ 하는 생각 들지 않으신지?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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