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마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뒤늦게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됐다. 할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교권침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오래 들어온 것 같다. 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아무 변화가 없었는지 의문이다.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된 건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6년간 교사 10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하는데 왜 교권침해 문제는 주목받지 못했는지 화가 난다.
항상 초중고 선생님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과 초중고 선생님들이 하는 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생활지도라 일컬어지는 어린 사람들이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받는 지식 외적인 가르침일 것이다. 인간발달이론을 아는 척하진 않겠지만, 에릭슨의 정신사회적 이론만 봐도 한 인간은 태어나가 새로운 인격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겪는 갈등과 위기가 있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겪어 내야 다름 인견발달이 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의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현대인은 그 시간에 건강한 인격체로 자라나려면 제대로 된 생활지도가 필요하다. 물론 가족과 사회의 생활지도가 병행되지 못하는 학교에서 만의 생활지도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지만 의무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가족과 기타 사회망이 한 개인의 생활지도를 담당하지 못하더라고 학교라는 사회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이루 말할 것 없이 중요한 존재다. 그만큼 그 자리의 책임감은 무겁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초중고 선생님이 될 인격은 아니라는 생각을,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일을 기꺼이 나서서 해주는 이들이 있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임용고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라도 이 어려운 일을 해주는 것은 선생님들이다. (물론 공교육에 종사하지 않는 선생님도 있다. 그들의 노고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앞으로 살면서 필요할 지식을 가르치고, 올바른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지도를 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서 굳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로 교사직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중요한 일을 자발적으로 맡아주는 사람들임은 변함없다.)
이들이 아이들을 맡아서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이라도 잘 돌봐줄 수 있게 교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동학대, 학생인권침해, 체벌금지, 모두 중요한 사항이다. 이 문제는 아동학대/학생인권침해/체벌금지/등을 포기하고 교권을 보장하자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선생님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 없는 학교, 선생님이 없는 학교는 존재할 수 없다. (선생님을 대체할 AI가 개발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세대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기술과 소프트웨어는 몇 년 안에 충분히 개발이 가능하다고 보지만 인간 간의 유대감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부분까지는 커버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AI지지자들은 그런 유대감마저도 머신러닝을 통해 배운 AI라면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말 그래도 모방일 뿐이다.)
선생님들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일 거라는 상투적인 말은 삼가겠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논란이 커지고 여러 정치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서이초 선생님이 자꾸 잊히는,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서이초 선생님이 올해 초에 종업식을 맞아 학부모들에게 쓴 편지의 전문을 옮겨본다. 이제는 들을 수 없을 서이초 선생님의 목소리를 이렇게나마 보존해 본다.
학부모님들께,
안녕하세요. 한 해 동안 우리 예쁜 아이들 담임을 맡은 교사 ㅇㅇㅇ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달드리고 싶어 이렇게나마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리려 합니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교실에 처음 들어서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이들과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2022년은 저에게 참 선물 같은 해였습니다. 그 여느 때보다도 너무나 훌륭하고 착한 아이들을 만나 함께할 수 있음에 저에게도 너무나 가슴 벅차고 행복했던 1년이었어요.
순수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스물일곱 명의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앞으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아이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였습니다. 천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저도 더 열정을 갖고 가르친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우리 아이들을 믿고 맡겨주시고, 아이의 학교생활을 늘 지지해 주셨음에 담임교사로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학부모님들께서 든든히 계셔 주신 덕분에 우리 1학년 ㅇ반 공동체가 더욱 빛날 수 있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르치며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참 대견하고 흐뭇했습니다. 원 없이 웃으며 즐거웠던 순간, 속상하고 아쉬웠던 순간들 모두가 아이들의 삶에 거름이 되어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존재가 되도록 도울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ㅇ반 친구들 모두 함께 한 공간에 모두 모이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마 서로를 기억하고 좋은 추억을 가득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도록 오래오래 응원하겠습니다.
1학년 ㅇ반의 담임교사일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가올 봄날과 함께 모든 가정에 행복과 평안이 가득 넘치기를 바랍니다.
2023.2.10 1학년 ㅇ반 담임교사 ㅇㅇㅇ드림.
누가 봐도 참 맑은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소중한 편지다.
선생님의 마음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의문이 생길 때마다 읽어보고 싶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