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by 서하


친구 하나 없는 동네에 살게 되었다. 20살까지 부산에서 자랐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서울에서 지냈으니 친구들은 주로 부산과 서울에 있었다. 어릴 때 여행 몇번 와본거 말고는 아무 관련도 없고 아는 사람도 한명 없는 경주에 어쩌다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부산에서 가까이 살던 이모가 갑자기 경주로 이사를 갔고, 엄마는 이모집에 놀러갔다가 경주의 매력에 빠져 자기도 은퇴하면 경주에 살겠다고 선언해버린게 시작이었다.

처음 카페를 오픈하고 몇년간은 정말 외로웠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20대에 말 통하는 또래 친구가 없으니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 중간에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경주 라이프를 벗어났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기를 택한 나, 서울에서 복작복작 또래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느껴지는 군중 속의 외로움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럴테다. 이제는 외로움은 인간의 그림자 같은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에, 외로움을 벗삼아 친구가 없어도 혼자 잘 노는 즐거운 외톨이로 거듭난 것 같다. 말은 이렇게 강한척 하지만 사실은 주변에 마음 통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건데, 카페를 오픈한지 9년차가 되면서 오래된 지인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카페 초창기부터 꾸준히 찾아줘서 서로의 역사를 아는 단골도 생기고 친한 동네 이웃도 생겼다. 물론 내 또래는 없고 대부분 부모님 연배인 어른들이지만,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니 나는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친구란 무엇일까,

친밀함이 느껴지고 함께할 때 편안한 존재를 뜻할 것이다. 서로에 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상대가 안전하다는 신뢰가 생기면 점차 친밀함이 쌓인다. 편하게 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친구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경주에 몇명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친구들이 있다.

오픈 초기 부터 만났으니 꽤 오래된 친구들, 지금은 서로의 속사정을 알고 고민도 편하게 말할수 있는 친구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의 좋은 점은 그들은 인생 선배이기에 내가 겪는 고민들을 이미 다 겪어봤다는 거다. 그래서 그들이 경험에서 우러나 해주는 조언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 때문인지 상대의 말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잘 들어주신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애정을 담은 눈빛을 보내준다. 우정은 이렇게 각자의 상황이나 위치가 달라도 마음이 통하면 그걸로 유지되는 거였다.

최근에도 친구가 생겼다.

우리 카페 근처에는 오래도록 동네를 지켜온, 나름 이곳에서는 물좋기로 유명한 온천이 있는데 경주에 이사오고 부터 다닌 목욕탕이었다. 그곳에서 알게된 세신사 아주머니, 처음에는 그냥 세신사 대 고객으로 한번씩 보는 사이였다. 세신사 아주머니가 두분이었는데 기다려서라도 그분한테 받을 정도로 때 잘밀어주는 아주머니 였을뿐, 서로에 대해서 아는게 전혀 없었다. 어느날 부터 그분이 더이상 안보이고 새로운 세신 아주머니로 바뀌었길래 그만두셨나 보다 하고 잊고 지냈다. 그렇게 몇년후 내가 서울살이를 하다가 다시 경주로 돌아온 작년에 이모를 통해서 그때 그 세신사 아주머니가 마사지 가게를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몸을 마사지 해주는데 너무 시원한데다 가격도 저렴하다고 가보라는 거다.

카페를 하면 몸을 많이 쓰니까 자주 온몸이 뭉치고 아프다. 어느날 등이 너무 아프길래 이모의 추천을 떠올리고 연락을 드리고 마사지 가게로 찾아갔다. 아주머니는 나를 기억하시진 못하셨지만(자연인의 상태로 만났었으니 ㅋㅋ) 나는 기억이 떠오르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살이 많이 빠지시긴 했지만.

친절하게 맞이해주신 후 곧바로 마사지가 시작되었는데 여러 종류의 고주파 기계로 뭉친 곳을 집중적으로 풀어주셔서 ‘악‘소리가 날 정도로 아프지만 시원했다. 발바닥 부터 두피까지 풀어준후 배에 무언가 따뜻하고 찌릿한 걸 두르고 원적외선 돔 아래에 누워서 땀을 뺐다. 그동안 얼굴에는 리프팅과 수분 관리를 해주셨다. 2시간에 걸친 전신 마사지를 해주시면서 몇년동안 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얘기해주셨다. 두가지의 암을 진단 받고 수술과 항암으로 많이 아프셨다고, 이제는 거의 다 회복이 되어서 이렇게 일도하고 사람도 만난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주머니의 사연과 마사지가 함께 어우러져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서울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누구도 본인이 아팠던 것처럼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해주시는 관리를 받으면서 내면의 무언가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완된 몸으로 바로 집으로 달려가 숙면을 취하면 다음날 컨디션이 회복되는 걸 여러번 경험하면서 컨디션이 다운되는 날은 바로 아주머니에게로 달려간다. 나의 힐링 공간으로.

하지만 아주머니의 마사지 스킬만이 나를 치유해주는 요소인건 아니다.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따뜻함이 내 몸과 마음을 녹여준다. 아주머니를 여러번 만나게 되면서 이런저런 인생사를 듣게 되었는데 드라마에 나올법한 힘든 역경을 다 지나오신 분이었다. 여러 차례의 경제적, 물리적 고난을 겪어오면서도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자식들을 키워내신 분이었다. 지금은 다 장성한 자녀들이 손자손녀도 낳아서 서로 친구같이 잘 지낸다고 하셨다. 마사지 하는 중간에도 자식들과 손자들이 종종 전화와서 안부를 묻는데 항상 유쾌하게 오가는 대화를 들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죽을만큼 힘든 순간들을 견뎌내고 살만해지니 건강이 무너져서 한동안 고생을 했지만 그또한 밝게 이겨내신 거였다. 삶을 통달하신 분, 이런 분이 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의지가 꺾일만한 힘든 역경을 겪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는 것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본인이 어려움을 겪은 만큼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을 잘하시니, 내가 종종 꽉 막힌 심정을 토로하면, 잘 들어주시고 그 어려움을 헤아려주신다.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얘기하면서 좋게 풀릴거라는 말을 꼭 해주신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격려와 함께.

가끔 마사지 받다가 눈물이 날때가 있다. 몸만 따뜻하게 풀리는게 아니라 마음까지 이완되어서 그런가보다.

나는 이런 분들을 인생의 친구, 그리고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공감해주고 헤아려주고 또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사람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는 시절인연들이지만 마음에는 평생 간직될 좋은 인연이다. 그들 덕분에 경주 생활이 덜 외롭고 더 풍요롭다. 역시 사람은 좋은 사람을 통해 치유받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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