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을 시작한지 어제 딱 한달을 채웠다.
어제의 WOD는 (400m 달리기, 10버피, 15 토 투 바) * 5 라운드 25분 컷.
그동안의 와드 중에 가장 힘든 레벨이었다. 야외를 400m 달리고, 체육관 들어와서 버피 그리고 토투바하고 다시 나가서 뛰고.
거친 숨을 쉬며 겨우 23:48에 마쳤다. 성공 못할줄 알았는데 제한시간 안에 들어온거 자체가 나로선 아주 잘한거였다.
매일 가고 싶었는데 일이 점점 늘어나면서 일주일에 두 번밖에 못간 주도 있지만, 그래도 지난 한달 동안 열세 번을 크로스핏에 참석했다.
관장님이 각자 체력에 맞춰서 할 수 있게 조절해주셔서 처음 배우는 근력 미달자인 나한테도 크게 무리가 가지않는데다, 내 타임에는 사람도 적어서 한명씩 자세를 꼼꼼하게 봐주셔서 제대로 운동이 된다. 크로스핏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인줄 알고 지레 겁먹고 시작을 몇달이나 미룬게 후회스러울 정도다.
매번 수업에 오는 사람들은 바뀌지만 어떤 그룹 속에서도 내가 제일 느리고 무게도 못친다. 그런데 나는 그런 포지션에 익숙하고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어릴때 부터 겪은 단체 생활을 통해 학습된 포지션일텐데, 세상에는 상당히 경쟁적인 사람들이 많고 '친구'라고 포장한 관계일지라도 자기보다 잘하는지 살피고 좀 잘하면 경계 대상이 되는걸 많이 느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능력을 증명해내야하는 중요한 상황이 아니면 보통 힘을 빼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사실 못하는 척 하는게 아니라 몸 쓰는거 관련해서는 정말 못하는 축에 들기 때문에 초연하게 참여할 뿐이다. 다만 나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길 바랄뿐, 과거의 나보다 좋아졌으면 그저 행복하다.
어릴때 주변과의 비교가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걸 뼛속까지 느꼈다.
비교와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한국 교육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보다 더 성적이 좋은 친구, 또 어떨 때는 비슷한 친구와 비교하면서 공부했는데 그럴수록 공부 능률도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 정말 로봇같이 공부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비슷한 성씨인 그녀와 나는 25번, 26번으로 급식당번을 하면 꼭 세트로 하게 됐다. 차갑고 도도한 친구라, 막역하게 또래들과 섞이는 아이가 아니어서 나도 별말을 안걸고 조용히 배식만 하고 있었다. 그날은 숙주무침이 반찬으로 나왔다. 그 당시 나는 ‘숙주’라는 게 뭔지 몰랐다. 얼핏 보니 생긴 게 대가리 없는 콩나물 같길래 당연히 콩나물 무침이라고 생각했다. 배식하던 통이 비어갈 때쯤, 지나가던 급식 아주머니께 "여기 콩나물 좀 더 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그 도도한 친구가 피식 웃으면서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숙주."
친하지도 않은 잘난 친구에게 '숙주'로 한 방을 먹으니,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자존심이 팍 상했다. 그때부터 그 완벽하고 얄미운 친구를 이겨보고자 악착같이 공부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는 반에서 2등, 전교 2등이었다. 그녀가 절대로 1등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나는 노력에도 그해 내 성적표에는 '만년 2등'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그때 속상한 성적표를 보면서 깨달은건,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실제로 누군가를 이기지 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기준을 설정해놓고 내 자신을 그에 맞춰 채찍질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거였다. 자꾸 비교할수록 나의 모자란 점만 보이고 부족하게 느껴져서 더 위축되었다. 중2 때 그녀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2가지 큰 인생 교훈을 얻었다. 하나는 앞으로 나를 남과 비교하지 말것,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뭔가를 잘하게 된다고 한들 절대 잘난 척 하지 말 것이었다. 한 해가 지나자 좋은 교훈을 준 그녀와 다른반이 되었고, 그 후로는 공부할때 의식적으로 과거의 나의 점수와 공부시간과 비교하는 연습을 했고 그게 습관이 되어 남과 잘 비교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각자 다 다른 강점과 약점, 그리고 개성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내가 누구보다 잘난것 같다고 우쭐해지지도 않고, 부족한것 같다고 위축되지도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더 잘났을수도 있지만 분명히 어떤 부분에서는 그사람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각자의 속도로 자신의 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일뿐, 모두 희노애락의 사이클 속에서 살아가니까. 그저 내 모양대로, 색깔대로 피해주지 않고 즐겁게 살면서 ‘과거의 나’보다 더 나아진 ‘현재의 내’가 되면 그게 바로 성공한 삶이다.
정말로, 크로스핏에서 나는 거북이다. 러닝에서도, 요가에서도, 참으로 욕심나는 분야에서 여전히 거북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과정들을 즐기며 걷는 거북이의 뒷모습은 눈물나게 멋있다. 나의 인생 길을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려 하다보니 참 많이도 주저앉고 돌아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내 빛을 따라가야지, 느리더라도 끝까지 완수해야지.
걷다 보면 뛸 수 있는 순간도 오고, 언젠가는 점프하는 순간도 오겠지!
거북이의 꿈은 원대하다.